美의 ‘한국 TPP 참여’ 요구는 日시장개방 압박수단 활용의도 이미 통상분야 甲이 된 한국, 乙 자처해 가입할 필요 없어 국제사회서 소외 우려된다면 러-中과 FTA 체결이 해법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전 주유엔대사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12개 나라가 모여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것이다. 미국은 예전부터 우리에게 TPP 참여를 요구했다. 한미 FTA에서 다루지 않은 추가 분야들이 있고 한미관계를 격상시킨다는 논리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핵심일까?
TPP에 참여하는 국가들의 경제 규모를 보면 TPP는 사실상 미일 자유무역협정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미국은 일본 시장, 특히 농수산물 시장을 개방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미국의 협상전략은 한국을 TPP에 참여시켜 일본 시장을 개방하는 데 레버리지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즉, 한국도 높은 수준에서 개방했으니 일본은 한국보다 더 높은 수준의 개방을 해야 한다는 논리로 일본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때 지각생이었지만 이제 FTA를 가장 많이 체결한 모범 국가 중 하나인 한국이 TPP에 굳이 가입할 필요가 있을까? 그것도 TPP 참여국으로 농산물 수출국인 호주와 캐나다에 비싼 입장료를 내면서까지.
미국 업계와 정부에 있는 지한파 인사들은 비공개적으로 왜 한국이 TPP에 가입하려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TPP 가입을 주장하는 우리 측 인사들은 소외되지 않기 위해 가입하려 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하지만 좀더 솔직해져 보자. 지금은 타결 가능성이 낮은 TPP가 나중에 타결될 경우 책임 소재에 대한 우려 때문이 아닐까. 우리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찬반의 논란이 있다. 개인이나 공동체나 최악의 결정은 결정을 해야 할 때 못하는 것이고 차악의 결정은 남들을 따라서 하는 것이다. 통상 분야에서 갑(甲)인 우리가 을(乙)을 자처해서는 안 된다.
현재 굳건한 한미관계를 더 격상시킬 필요에 따라 TPP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통상과제를 안보 틀에 넣어 협상할 때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진정한 한미관계의 격상은 우리의 TPP 가입, 한미 방위비 분담금 증대, F-35 구매 등을 하는 반대급부로 주변 열강이 우려하는 핵잠수함 건조, 미사일 탄두 1t으로의 증대 및 에너지 주권 인정 차원에서의 우라늄 농축 등에 미국이 동의하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의 소외감이 우려되어 이에 따른 가시적인 결과가 필요하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시장인 러시아 및 독립국가연합(CIS)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 된다. 그리고 현재 협상하고 있는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진행하면 된다. 중국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싶어 한다. 미국과 신대국 관계를 형성하여 세계질서를 운영하고자 하는 중국은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구축하고 싶어 한다.
이런 전략과 국민적 의지가 뒷받침되어야만 수평적인 관계가 한 번도 없었던 동북아에서 우리가 통일을 주도할 수 있는 입지를 굳힐 수 있다. 이것이 안보와 경제가 융합·복합된 레버리지다.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전 주유엔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