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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천에 안개 드리우면… 그를 만날 것 같다

입력 | 2014-02-27 03:00:00

기형도 떠난 지 25년… 추모문학제 3월 6일 광명시민회관서 개최




기형도 시인(위 사진)의 가족이 광명에 새로 지어 살던 집(아래 사진)에서 ‘엄마 걱정’과 ‘위험한 가계·1969’ 같은 시가 태어났다. 이 집은 2004년까지 철공소로 쓰이다 헐렸다. 시인이 남긴 단 한 권의 시집이자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1989년·문학과지성사)은 지금까지 26만5000부가 팔렸다. 광명시청·광명문화원 제공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안개’)

공장 지역의 여공들, 안양천 둑길의 안개, 기아대교 근처 388번 버스 종점…. 한국 현대시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기형도(1960∼1989) 시인의 삶과 시의 못자리는 광명이었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안개’를 포함해 ‘위험한 가계·1969’ ‘388번 종점’ ‘엄마 걱정’ 등 기형도의 시 곳곳에는 광명의 풍경이 새겨져 있다.

기형도는 다섯 살 무렵부터 스물아홉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광명시 소하동(옛 경기 시흥군)에 살았다. 시인의 25주기 기일(3월 7일)을 앞두고 3월 6일 시인을 기리는 문학제가 광명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다. 광명시는 KTX 광명역 주변에 2015년 기형도문학공원을 열고 2017년에는 이 공원 안에 기형도문학관을 개관하기로 했다.

팔순이 넘은 시인의 어머니 장옥순 씨는 아들에게 보내는 영상을 최근 촬영했다. 이 영상은 기형도 25주기 문학제에서 상영된다. 기형도의 시에도 등장했던 그 어머니는 가슴에 묻은 아들에게 “보고 싶다”고 영상 편지를 남겼다.

시인은 1989년 3월 7일 새벽 서울 종로 파고다극장에서 뇌중풍으로 숨졌다. 아들이 갑작스레 떠난 뒤 동네사람들은 “형도 엄마가 중얼중얼 거리면서 다닌다”고 수군거렸다. 어머니는 신춘문예에 당선된 아들이 “취직되는 것보다 시인 되는 게 더 좋다. 많은 사람들이 내 시를 읽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을 마음에 새겼다. 어머니는 “우리 아들의 시가 널리 읽히게 해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걸었다고 한다.

기형도 가족은 1964년 당시 경기 연평도에서 시흥군 서면 일직리 뚝방마을에 있는 방 두 칸짜리 기와집으로 이사했다. 광명문화원에 따르면 이 자리는 KTX 광명주박기지 정문 앞으로 추정된다. 기형도가 시흥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듬해인 1968년 이들 가족은 소하리(현 소하동 701-6번지)에 새 집을 지어 이사를 했다.

1969년 정초 기형도의 아버지는 뇌중풍으로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위험한 가계·1969’) 쓰러지고 만다. 아버지의 급환은 가족의 생활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어머니는 장사에 나서고 누나들은 신문배달을 했다. 막내였던 기형도는 빈 집에서 혼자 숙제를 하며 엄마를 기다렸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시장에 간 우리 엄마/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 오시네.’(‘엄마 걱정’)

젊은 시인에 이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가족들은 소하리 집을 떠나 인근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시인이 살던 집은 2004년까지 철공소로 쓰였고 이후 그 자리에 창고가 들어섰다.

기형도 25주기 문학제에서는 기형도의 대학 친구인 소설가 성석제와 문학평론가 이영준이 회고담을 들려주며 시인 김행숙, 소설가 황정은이 그의 시를 낭독한다. ‘엄마 걱정’에 곡을 붙여 노래한 소리꾼 장사익과 뮤지컬 배우 배해선도 출연한다. ‘위험한 가계·1969’는 낭독극으로 꾸며진다. 선착순 무료 입장. 02-2680-6142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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