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금지法 가이드라인 없어 교사-학부모 혼란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초중고교는 정규·방과후 수업에서 선행학습을 할 수 없고 시험 출제도 불가능하다. 대학도 논술고사에서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나는 내용을 출제할 수 없고 학원이나 개인과외 교습자는 선행교육 광고나 선전을 할 수 없다. 특히 학교 및 교사는 이를 어기면 징계를 받는다.
○ 고심하는 교사들
하지만 올 2학기부터는 다른 교과목도 단속 및 징계 대상이 된다. 교사들은 “국어 영어 사회 과학 과목에 대한 예습과 선행의 기준이 되는 가이드라인이 없어 곤란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과목들의 경우 학생의 지적 발달에 맞춰 기본개념이나 원리를 반복적으로 학습하는 방식으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기본 뼈대는 같으나 내용이 심화된다. 이 경우 심화학습을 사실상 선행학습으로 규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강원 경포초 김효종 교사는 “선행학습에 대한 기준 자체가 애매하고 선행학습 금지법이 예습을 하지 말라는 의미로 들릴 수도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학교에서 국어 영어 시험문제를 출제할 때는 변별력을 가늠하기 위해 교과서 밖 지문으로 난도가 높은 문제를 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교과에서 벗어난 내용을 시험에 출제하지 못하게 하는 선행학습금지법은 이런 학교현장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서울 성신여고 박현성 영어교사는 “영어과목은 문법과 어휘, 지문 등이 다소 교차될 수밖에 없다”며 “출제된 지문에 타 단원의 문법과 어휘가 나올 경우 학부모, 학생들의 항의나 민원이 제기될 수 있다. 지금 법대로라면 교사들이 혼합형 대신 단순암기형 문제 위주로 출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선행보다 복습이 중요
광주 광일고 심은정 국어교사는 “성적이 오른다는 보장은 없지만 심리적인 안도감을 찾기 위해 학원을 다니는 중하위권의 학생이 많다. 이번 기회에 선행 학원을 과감히 끊고 혼자 공부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선행학습이 기승을 부리는 수학의 경우 과도한 선행의 문제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저학년 때 수준에 맞지 않은 선행학습을 하면 아예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기 쉽다.
학부모들도 자녀의 자기 주도 학습을 도우면서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적어도 선행학습금지법이 적용되는 2학기 시험부터는 자녀를 학원에 보내기보다는 학교의 야간 자율학습시간을 활용하도록 하고, 굳이 학원에 보낸다면 복습 위주의 수업을 진행하는 곳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 근본적인 입시 시스템 개선 필요
경기 상록고 홍석범 교사는 “기본적으로 교과목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시간 내에 학교에서 다 가르치기 힘들어 선행학습이 성행하는 것”이라며 “이 부분에 대한 근본적인 조치가 있어야 선행학습금지법이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 입시에서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수시모집이 사실상 3학년 2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이뤄지므로 고교에서 3학년 1학기까지 3년 치 교육과정을 끝내버리는 문제점도 해소해야 한다.
류정섭 교육부 공교육진흥과장은 “법안보다 더 구체적인 내용으로 시행령을 만들고 있다. 학교현장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 지금처럼 학생과 학부모들이 우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모진수 인턴기자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