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강온 양면전술] “첩자”라며 석달간 신원공개 거부… 남북대화 국면 협상카드로 쓸듯
북한이 ‘남조선 정보원 첩자’라고 주장하며 억류 중인 침례교 선교사 김정욱 씨(50)가 27일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 당국의 선처를 호소했다.
AP통신에 따르면 김 씨는 “중국을 통해 북한에 들어간 다음 날인 지난해 10월 8일 붙잡혔다”며 “반국가 범죄 혐의로 억류됐고, 나의 행동에 대해 사죄한다”고 밝혔다. 이어 “성경과 교리 교육용 영상물 등을 갖고 평양에 들어갔으며 북한에 들어가기 전 수많은 정보 요원들을 만났고 수천 달러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김 씨의 신원 공개를 거부해오던 북한이 갑자기 기자회견을 마련하고 외신기자들에게 이를 공개한 것은 향후 남북 대화에서 그를 ‘협상 카드’로 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부는 김 씨의 기자회견 소식이 알려진 뒤 북한을 향해 “김 씨를 조속히 석방해 송환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김 씨 석방을 놓고 남북간 교섭이 시작될 수도 있다.
김 씨는 2007년부터 랴오닝(遼寧) 성 단둥(丹東)의 지하교회에서 탈북 주민 등에게 숙식을 제공해왔다. 지난해 상반기 중국 공안이 교회에서 생활하던 북한 주민들을 강제 북송하자 그해 10월 7일 압송 주민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 평양에 들어갔다.
김 씨는 “북에 기독교 나라를 세우려면 현 정권과 정치 체제를 붕괴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국가정보원의 도움을 받았다”며 ‘남조선 첩자’라는 북한의 주장을 시인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던 중에 한동안 입을 다문 채 침묵하기도 했다. 김 씨는 기자회견에 나온 이유에 대해 “가족에게 건강하게 잘 있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북한 당국이 자비를 보여 풀어주기를 호소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북한이 외신기자들까지 불러 김 씨의 기자회견을 공개한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김 씨의 석방을 ‘통 큰 용단으로 양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협상의 주도권을 쥐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국정원 측은 “국정원과 김 선교사의 입북은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한편 국내에 체류 중인 김 씨의 부인 이모 씨는 “얼굴이 초췌하지 않아 그나마 안심했다. 국정원 일을 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저쪽(북한)에서 협박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 윤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