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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미술계의 은밀하고도 교묘한 암거래 현장

입력 | 2014-03-01 03:00:00

◇사라진 그림들의 인터뷰/조슈아 넬먼 지음·이정연 옮김/472쪽·2만 원·시공아트




미술은 아름다운가. 마르셀 뒤샹이 1917년 남자 소변기를 작품으로 출품한 이후 미술품의 미적 가치가 논란거리가 됐다. 그렇다면 미술 산업은 어떤가. 이 책의 답변은 명쾌하다. “미술 산업은 아름다움과는 결단코 거리가 멀어요.”

잡지사에서 일하던 중 우연히 미술품 도둑을 만나게 돼 미술 산업을 취재하게 된 저자는 말한다. “지난 몇 년간 나는 미술이 지구상에서 가장 부패하고 지저분한 산업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죠.”

이 책은 저자가 문화재법 전문 변호사, 미술품 전문 수사관, 미술관 관장, 아트 딜러, 미술품 도둑 등을 만나 취재한 9년간의 기록이다. 캐나다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미술품 이면의 어두운 거래를 고발한다.

미술품의 가치는 상품성과 직결된다. 한마디로 현금으로의 교환가치다. 경매회사를 중심으로 딜러, 컬렉터, 바이어들이 꼬이는 건 이 때문이다. 미술품 암시장 규모가 마약, 돈세탁, 무기거래 다음인 이유다. 당연히 도둑이 활개를 친다. 렘브란트의 ‘야코프 데 헤인 3세의 초상’은 네 차례나 도난당했다. 몸값은 8000만 달러(약 857억 원)나 되지만 크기는 30cm²가 안 돼 들고 달아나기 딱 좋아서다.

하지만 저자가 만난 일류 도둑들은 “너무 유명한 그림을 훔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한다. 덜 유명해도 훔칠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장물은 딜러를 몇 번 거치면 쉽게 ‘세탁’된다. 악수를 나누고 현금과 작품만 주고받으면 거래는 끝난다. 콧대 높은 미술관도 출처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암시장과 합법적인 시장의 구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충격적인가. 돈세탁 용도로 미술품을 사 모으는 권력가와 재력가를 떠올리면 새삼스럽다. 미술품의 검은 거래는 최근 일만도 아니다. 미술사는 약탈의 역사와 맞물린다. 그 실태는 “이집트 오벨리스크를 보고 싶으면 로마로 가야 해요”란 한 문장에 압축돼 있다. 책은 무겁지 않은 방식으로 미술품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하지만 문화유산을 약탈당한 경험이 있는 우리는 책장을 덮는 마음이 그리 가볍지 않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