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毒)을 차고’
김영랑(1903∼1950)
내 가슴에 독毒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아도 머지않아 너 나마저 가버리면
억만 세대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한디!’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디!’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미디어 아티스트 이상현 씨의 ’역사의 어느 날’
그의 이름은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처럼 우리말의 운율과 섬세함을 지켜낸 서정시의 높은 봉우리이자 불의에 항거한 민족시인이다. 1939년 발표한 ‘독(毒)을 차고’는 식민지 현실에 안주하고 타협하기보다 죽음으로 맞서겠다는 결연함을 다짐한 저항시였다. ‘이리 승냥이’의 역사를 죄다 부인하는 일본의 후안무치한 행실을 보면서 미디어 아티스트 이상현 씨의 작품이 생각났다. 일제강점기 흑백 사진을 합성해 과거와 현재를 포개 놓은 ‘낙화의 눈물’ 연작은 흘러간 어제를 통해 오늘을 돌아보게 한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 편에서 “일본인들은 고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은 근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 문화를 무시한다”고 썼다. 국제 사회에서 공생의 자세를 회복하는 열쇠로 그가 제시한 것은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에서 언급한 한일 쌍둥이론이었다.
이웃이 밉다고 지긋지긋하다고 훌쩍 이사를 갈 수도 없는 상황. 원인 제공이야 늘 일본이 하지만 두 나라의 꼬인 관계는 우리에게도 하등 이로울 게 없다는 게 불편한 진실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