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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이주열 차기 한은 총재, 청와대에 ‘아니요’ 할 수 있어야

입력 | 2014-03-04 03:00:00


한국은행 부총재 출신 이주열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가 차기 한국은행 총재에 내정됐다. 이 후보자는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김중수 총재의 뒤를 이어 중앙은행 수장(首長)의 막중한 역할을 맡게 된다. 2012년 개정된 한국은행법에 따라 한은 총재로는 처음 국회 인사청문회도 거쳐야 한다.

이 후보자는 1977년 한은에 들어가 2012년 서열 2위인 부총재로 퇴임할 때까지 35년간 중앙은행에 몸담은 ‘정통 한은맨’이다. 통화정책의 전문성과 국제 감각, 중앙은행의 사기를 감안한 무난한 인선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인이나 전현직 관료 출신 같은 ‘낙하산 인사’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안도하는 분위기다.

차기 한은 총재 앞에 놓인 국내외 경제 현실은 엄중하다.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와 2010년 유럽발 재정위기라는 두 차례 글로벌 경제위기의 충격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에는 신흥국발 금융위기 조짐으로 세계 경제가 다시 출렁거렸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악화하면서 어제 세계 각국의 주가가 급락하고 신흥국 통화가치가 일제히 하락세를 보여 새로운 불안 요인으로 떠올랐다. 한국 경제는 다소 온기(溫氣)가 살아나고 있다고는 해도 기나긴 불황의 터널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앙은행은 전통적으로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지만 최근에는 금융시장 안정과 경제 성장도 새롭게 중요한 책무로 떠올랐다. 이성태 전 한은 총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물가 안정을 한은의 업무 목표로 묘사하는 것은 정치적 수사(修辭)였다. 한은은 경제 발전을 포함한 경제 전체의 안정을 목표로 하고 통화정책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흐름은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후보자는 정치권의 압력으로부터는 확실히 방어벽을 치되 청와대나 정부 경제팀과의 관계는 사안에 따라 때로는 협조하고, 때로는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하는 ‘원칙 있는 유연성’을 보여주기 바란다. 각국 중앙은행과의 긴밀한 협조는 물론이고 시장을 둘러싼 소통능력 역시 중요하다. 한은의 독립성은 중요하지만 자칫 기관 이기주의에 빠져 독불장군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중앙은행 독립으로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 경제가 물가 안정, 금융 안정, 경제 성장의 세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이 후보자는 역량을 발휘할 책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