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서 정당 선택하게 강요… 정치 관심없는 사람 많은데 ‘무당파’가 고작 25%로 집계 응답자 통계로 기계적 결론… 왜곡된 정보 만들어 위험… 여론 파악에 도움주는 조사를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런데 수많은 설문 결과를 접하면서 그것들이 신뢰할 만한 것인지, 그리고 해석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동료들과 점심 먹으면서 가십거리 화제로 다루는 가벼운 내용이라면 몰라도 공직을 선출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설문조사라면 조사와 관련해서 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지난달 24일 MBC가 조사전문회사에 의뢰해서 조사한 서울시장 지지도를 보면 가상대결 3자 구도에서 정몽준 의원 41.3%, 박원순 시장 35%, 새정치연합 후보가 6.1%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합친 82.4%를 제외한 17.6%가 ‘모름’이라 답하거나 대답을 유보한 부동층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조사회사에서 지난 대선을 8일 남긴 시기에 조사한 결과를 보면 부동층이 13.3%였다(동아일보 2012년 12월 13일). 각각 선거 100일과 8일 남은 시점에 조사한 결과에서 부동층의 비율이 단지 5%포인트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설문조사에서 지지 정당을 물을 때에는 각 정당의 이름을 불러주고 선택하도록 하는데, 그 선택지들 중에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음’의 응답 항목이 포함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응답자들은 무의식중에 불러준 정당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자발적으로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대답하면 ‘그래도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정당은 어디인지’를 재차 물어 정당 선택을 강요하는 형식으로 질문이 구성된다. 그 결과 대다수의 응답자들이 별로 내키지 않아도 지지 정당을 선택하게 되고, 그 결과 무당층은 25% 정도가 되는 것이다.
세계부패바로미터(2013년) 보고서를 보자. 한국인 1500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 39%의 응답자가 2년 사이에 부패가 더 심해졌다고 평가하고, 13%만이 부패가 덜해졌다고 답변했다. 이 결과를 두고 한국 사회가 지난 2년 사이에 부패가 심해졌다고 결론짓는 것은 경솔한 것이다. 실제로 부패가 심해졌을 수도 있지만 한국인의 부패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기 때문에 부패가 심해졌다는 응답이 많을 가능성도 있다. 정확한 해석을 위해서는 이전 조사 결과 및 추가적인 자료를 함께 이용해야 한다.
위에서 예시한 몇 가지 사례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가 간단히 설문을 만들고 응답 비율을 통계 처리해서 발표하고 기계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에 그친다면, 차라리 조사를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왜곡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다. 더욱이 선거와 같이 공적 행사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여론조사의 정확성과 해석의 전문성이 확실히 보장되어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선거여론조사공정심사위원회’를 각 선거단위에 설치하기로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상당하기 때문에 이번에 위원회를 제도화한 것은 적절한 조치이다. 기대컨대 선거 때만 활동하는 위원회가 아니라 여론조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 상시적 기능을 해주기 바란다. 고의로 여론을 왜곡하려는 여론조사를 걸러내는 역할뿐 아니라 어떤 여론조사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연구에도 기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