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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백범흠]중국 다롄에서 바라본 통일

입력 | 2014-03-04 03:00:00


백범흠 주다롄 출장소 소장

랴오둥(遼東)반도의 남단에 있는 다롄(大連) 시는 안중근, 신채호, 이회영 등 많은 애국선열들이 순국한 뤼순(旅順) 감옥이 있는 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분들이 다롄에서 최후를 맞은 것은 당시 다롄이 일제의 지배 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병탄할 수 있었던 것도 일본군이 1904년 12월 러시아군이 장악하고 있던 뤼순의 203고지를 점령하여, 뤼순 항에 정박하고 있던 러시아 함대를 격파하는 등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후 다롄에 관동군 사령부를 설치하고, 랴오둥 반도를 포함한 만주 전역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남만주철도도 다롄을 본부로 하였는데, 다롄공장에서 제작한 철도차량은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까지 사용되었다.

러일전쟁을 전후로 “다롄을 지배하는 자가 랴오둥반도를 지배하고, 랴오둥반도를 지배하는 자가 동아시아를 지배한다”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다롄이 북쪽으로는 선양과 하얼빈으로 이어지는 만주의 관문이자 서쪽으로는 베이징과 톈진, 남쪽으로는 칭다오와 웨이하이, 동남쪽으로는 인천과 남포, 동북쪽으로는 단둥과 신의주 등 팔방(八方)을 모두 감시할 수 있는 ‘아르고스의 눈’이기 때문이다. 다롄은 1945년 일제에서 해방된 후 소련군에 의해 점령되었다가 1951년 중국에 반환되었다. 다롄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에도 선진 도시로서의 지위를 잃지 않았다.

다롄은 1984년 국가급 경제특구로 지정되었으며, 1992년 이래 매년 두 자릿수의 경제성장률을 보여 왔다. 2008년에는 17%에 달하는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상하이나 베이징보다 높은 1만7000달러 수준이다. 670만 인구의 다롄은 1906km에 달하는 긴 리아스식 해안과 226개의 섬, 뤼순항과 동항 등 천혜의 양항(良港)들을 갖고 있다. 다롄은 해상교통의 허브라는 이점을 활용하여, 물류뿐만 아니라 석유화학, 정보기술(IT), 금융과 함께 조선 산업도 발전시켰다.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 랴오닝함이 다롄에서 건조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총 360억 달러가 투입되며, 다롄과 산둥반도를 잇는 길이 123km의 발해(渤海)해협 해저터널이 완공되면 다롄은 육상교통에서도 허브가 될 것이다.

한국과 다롄의 인연은 1992년 한중 수교를 전후하여 다시 시작되었다. 수교 이전부터 다롄에 진출하기 시작한 우리 교민 수는 현재 3만여 명에 달한다. 포스코, 한라, 파리바게뜨 등이 진출해 있으며, CJ와 세브란스병원도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9만여 명의 재중동포가 거주하고 있고, 북한인들도 무역대표부를 중심으로 5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26일로 안중근 의사가 다롄에서 순국한 지 104년이 된다. 100여 년 전의 민족적 치욕을 씻는 길은 완전한 독립으로 가는 통일 밖에는 없다. 발해의 푸른 물결을 보면서 남북한이 하나가 되는 그날을 꿈꾸어 본다. 안 의사의 영혼도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고향 해주 땅으로 돌아가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백범흠 주다롄 출장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