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대학 학과현황 첫 분석]<下>구조조정 제대로 하려면
대학을 세우기만 하면 학생이 저절로 몰렸고, 이는 등록금 수입으로 직결됐기 때문에 대학들은 마구 몸집을 불렸다. 특성화나 학과 경쟁력을 따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대학의 무사안일과 고등교육 정책 실패는 급격한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 잡화점이 된 국내 대학
당시 대학 정책을 담당했던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을 폼도 나고 돈도 불릴 투자처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일단 대학을 세우기만 하면 돈이 된다고 하니 설립 신청부터 해놓고 보자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대학은 대부분 종합대를 지향했다. 학과를 많이 만들수록 정원이 늘어나고, 그만큼 등록금 수입이 많아지는 구조 탓이다. 특히 이공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과 신설 비용이 적게 드는 인문, 사회계열 학과를 양산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고등교육 재정이 열악하고, 외국처럼 기부금이나 재단 지원금이 많지 않은 탓에 우리 대학들의 등록금 의존율은 기형적으로 높다. 사립대의 경우 2013년 현재 66.6%. 국가 예산 중 고등교육재정 비율은 0.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에 크게 못 미친다. 전체 대학 재정에서 정부 지원금액이 차지하는 비율도 20.7%로 낮다. 이 때문에 대학의 수입은 고스란히 학생수에 따라 좌우된다. 대학가에서는 입학 정원 1000명을 ‘손익 분기점’이라고 부를 정도다.
○ 번번이 실패한 구조개혁
국민의 정부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사태를 계기로 국립대 통폐합 및 학과 교환 등을 추진했다. 참여정부는 지방대 정원미달 사태가 심각해지자 구조개혁 선도대학 사업을 추진했다. 국립대는 유사 중복학과를 통폐합해 정원을 강제로 줄이고, 사립대는 대학 간 통폐합을 유도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이명박 정부는 대학구조개혁위원회를 만들고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제도를 도입해 상시적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대학 및 정원 감축 실적은 미미하다. 일례로 2004년 교육부는 “2009년까지 대학 통폐합을 통해 87개 대학을 정리한다. 국립대 1만2000명, 사립대 8만3000명의 입학 정원을 줄인다”고 예고했지만 공염불로 끝났다. 이는 대학이 몸집을 불릴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도 대학의 특성을 고민하지 않고 몸집 줄이기에 급급한 정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 대학 특성 고려한 구조조정 이뤄져야
최근 교육부가 9년간 16만 명을 감축하겠다는 대학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자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단순한 대학 규모의 축소에 그쳐서는 안 되고 대학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에 대한 질적 평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부가 감축 규모만 밝히고, 정작 중요한 평가 방식 및 지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도 질적 평가가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이다.
그간 교육부는 대학교육역량강화사업 같은 각종 학부 재정지원 사업을 시행해왔으나 개별 학과나 사업단에 대한 지원 성격이 강해서 대학 전반을 관통하는 특성화를 유도하지 못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우리나라 대학은 총장 임기가 짧아 가뜩이나 중장기 비전을 세우기 어려운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구조개혁 방향마저 오락가락하면 대학들이 복지부동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먼저 대학의 규모와 특성을 감안한 중장기 구조개혁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희균 foryou@donga.com·신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