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나’를 잠시 내려놓고, 느릿느릿 고요한 풍경 속으로…

입력 | 2014-03-04 03:00:00

일상의 속도를 잊게하는 두 전시
‘달의 변주곡’전 & ‘하늘땅바다’전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풍경으로 일상의 쉼표를 선물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달의 변주곡’전에 나온 다비드 클라르바우트의 ‘여행’(위쪽)은 명상음악처럼 위안과 휴식을 주는 자연의 이미지를, ‘하늘땅바다’전에 등장한 크레이크 월시의 영상작품은 빛의 변화로 눈부신 풍경을 보여준다. 백남준아트센터 아트선재센터 제공

공원 벤치에서 출발한 여행은 오붓한 산책길과 계곡, 아마존 열대우림 같은 울창한 숲을 지나 초록 들판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막을 내린다. 대형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12분 여정이 눈 깜작하는 동안 금세 지나간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평화로운 풍경이 번잡한 마음을 정화해준다.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의 ‘달의 변주곡’전에 등장한 벨기에 작가 다비드 클라르바우트의 영상 작품 ‘여행’이다. 명상음악이 주는 치유의 느낌을 비디오 작품으로 전하려는 작가의 의도는 성공적이다. 자연 다큐멘터리처럼 세상 어딘가에 있을 법한 풍경이 물 흐르듯 연결되는데 실제로는 3년에 걸쳐 하나하나의 장면을 컴퓨터로 만든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선 속도의 압박으로 지친 현대인에게 잠시나마 일상 탈출의 자유를 맛보게 하는 영상과 설치작품이 선보였다. 6월 29일까지. 4000원. 031-201-8571

자극적 양념은 빼고 심심한 맛이 매력적인 전시가 또 있다. 아트선재센터, 이화익, 인, 옵시스아트, 원앤제이, 스케이프 등 서울 소격동 주변 6개 전시장에서 열리는 ‘하늘땅바다’전. 제목 그대로 자연 풍광을 무제한으로 즐기는 기회다. 23일까지.

○ 달을 보는 여유

‘예술은 무엇일까요? 달인가요? 아니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까요?’ ‘달의 변주곡’전은 백남준이 남긴 화두에서 시작한다. 이채영 큐레이터는 “예전에 달을 지그시 바라보며 가졌던 관조와 명상의 시간을 선사하고자 했다”며 “현대미술이 난해하다는 편견을 넘어 직관으로 느끼고 시적인 순간과 만나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보름달에서 그믐달까지 바뀌는 달의 변화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일깨운 백남준의 13채널 영상 ‘달은 가장 오래된 TV’를 중심으로 일본의 히라키 사와, 료타 구와구보, 한국의 안규철 안세권 등의 작품이 모였다. 히라키의 6채널 영상 ‘하코’는 아주 서서히 움직이는 풍경화 연작 같다. 작가 자신의 무의식을 그린다는 목표 아래 완성한 영상을 통해 숨 막히는 풍경이 이어진다. 빽빽한 숲을 비추는 햇살, 거센 파도 위를 낮게 비행하는 새들, 바다와 달그림자 등. 자연의 숭고미에, 인적 없는 풍경과 슬쩍 끼어든 원자력발전소의 모습이 맞물려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조소희 작가의 설치작품은 명상을 위한 쉼터로 다가온다. 작가가 2주 동안 초록색 실을 거미줄처럼 엮어 만든 방에 놓인 작은 의자가 스트레스에 시달린 관객을 기다린다.

○ 자연을 보는 여유

‘하늘땅바다’전에선 수평선, 지평선을 원 없이 보여준다. 호주 예술기관 MAPP(Media Art Asia Pacific)에서 기획한 전시로 호주에 이어 서울에 왔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선보인 네덜란드 작가 얀 디베츠의 1970년대 초 작품 ‘Horizon’ 시리즈는 카메라 프레임을 기울여 만든 수직 수평 사선의 독특한 바다풍경으로 눈길을 끈다. 흔들리는 버티컬 블라인드에 밀려드는 파도의 영상을 투사한 데렉 크래클로, 90여 개 선돌이 밀집한 풍경을 해뜰 때부터 해질 녘까지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의 변화로 연출한 크레이크 월시 등 호주 작가의 작업이 주목된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풍경을 보여주면서도 ‘달의 변주곡’전은 시간성에 대한 성찰을, ‘하늘땅바다’전은 공간성에 대한 다양한 해석으로 접근한다. 굳이 주제와 개념을 따지지 않아도 괜찮다. 삶의 속도를 점검하고 싶거나 잃어버린 감성을 되찾고 싶을 때 둘러볼 만하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