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권법 50주년… 美 사회 변화 반영

세상이 변하니 아카데미도 변했다. 흑인의 시선으로 노예제를 그린 영화 ‘노예 12년’은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칼라퍼플’(1985년)은 아카데미 11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지만 단 하나의 상도 받지 못해 논란이 됐다. 동아일보DB
최근 6개월 사이 국내 개봉작만 봐도 이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27일 개봉한 ‘노예 12년’을 비롯해 백악관 흑인 집사의 이야기인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지난해 11월 개봉), 흑인 청년을 과잉 진압한 사건을 다룬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1월 개봉) 모두 흑인 감독이 흑인 주인공을 등장시켜 인종차별 문제를 다룬 영화다.
올해는 미국에서 공공장소 내 인종차별을 금지한 ‘민권법’이 만들어진 지 50주년 되는 해다. 지난해에는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연설로 유명한 워싱턴 평화대행진의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최근 흑인 영화 증가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위쪽부터 백악관 흑인 집사의 실화를 그린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 2009년 흑인 청년 과잉 진압 사건을 다룬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흑인 대통령이 등장한 영화 ‘화이트 하우스 다운’, 원작과 달리 흑인 주인공을 등장시킨 ‘장고: 분노의 추적자’. 동아일보DB
이들 영화에서는 흑인을 돕는 백인도 부각되지 않는다. ‘노예 12년’에서는 캐나다인 베스가 주인공을 돕긴 하지만 그 분량은 미미하다. 입양한 흑인 아들을 훌륭한 미식축구 선수로 키워낸 백인 어머니의 실화를 다룬 ‘블라인드 사이드’(2009년 제작)나 고난을 극복한 흑인 주인공 못지않게 백인 조력자가 부각된 ‘맨 오브 오너’(2000년) 같은 기존의 흑인 영화와의 차별점이다.
그렇다고 흑인을 ‘절대선’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노예 12년’의 주인공은 자유인이던 시절엔 노예 신분인 흑인과 선을 긋고 살았다. ‘버틀러’는 흑백차별을 바라보는 흑인 부자(父子)의 시각차를 부각시켰다. ‘오스카 그랜트…’에서는 주인공을 죽음으로 모는 백인 경찰을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영화 칼럼니스트 김치완 씨는 “흑백 갈등을 선악 대결로 보려는 교조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요즘 흑인영화는 진일보했다”고 말했다.
‘화이트 하우스 다운’(2013년)처럼 흑인 대통령이 늘고, 원작과 달리 주인공을 흑인으로 바꾼 리메이크작이 증가한 것도 특징이다. ‘장고’(1966년)를 리메이크한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년) 주인공은 제이미 폭스였으며, 1980년대 인기 TV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영화 ‘더 이퀄라이저’(올 상반기 개봉 예정) 역시 원작의 백인 주인공 역을 덴절 워싱턴이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