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명인열전]7년간 ‘자연농법 사과’ 재배 전남 장성군 전춘섭씨

전춘섭 씨가 5일 수확한 지 120여 일이 지났음에도 싱싱한 사과를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냉동보관이 아닌 실온에서 저장한 사과가 생명력도 더 강하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사과는 병해충이 많아 농약과 비료를 많이 쓰지 않으면 재배가 힘든 작물. 전 씨의 사과나무는 농약과 비료 없이 자연 치유로 병해충을 이겨낸다. 사람들은 이 사과나무에서 열린 열매를 ‘기적의 사과’ 또는 ‘자연사과’라고 부른다. 비록 볼품은 없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병해충을 이겨낸 사과에는 49년 외길 농부의 자존심이 오롯이 담겨 있다.
○ 자연 먹으며 자란 사과나무
전 씨는 사과나무를 심은 직후 주변에 호밀과 헤어리베치 등 풀을 심었다. 풀이 자라면서 메뚜기와 개구리 등 생명이 되살아났다. 생명이 살아나면서 병해충도 함께 발생했다. 그는 농약 대신 현미식초를 2주마다 뿌렸다. 가을이 되자 호밀과 헤어리베치가 시들면서 퇴비가 돼 땅에 힘을 보탰다.
사과나무는 농약 대신 현미식초를, 비료 대신 시든 호밀과 헤어리베치를 먹으며 자랐다. 나무를 심은 지 1년이 지난 2008년 병해충인 갈색무늬병이 찾아왔다. 잎이 모두 떨어지는 갈색무늬병은 사과나무에 치명적이다. 한 번 병이 돌면 3년 정도 사과 수확이 어렵다.
하지만 전 씨가 정성껏 심고 기른 나무는 스스로 갈색무늬병을 이겨내며 2009년 10월 첫 수확을 했다. 나무를 심은 지 3년 만에 사과 4000여 개를 수확한 것. 그는 수확량을 늘리기 위한 가지치기를 하지 않고 오히려 300그루를 베어내 나무가 햇살을 충분히 받으며 자라도록 했다. 건강한 땅에서 자란 사과나무는 자연 면역력이 커졌다. 이렇게 자란 사과나무에는 2010년 1만3000개, 2011년 3000개, 2012년 5000개의 열매가 맺혔다.
전 씨의 사과나무 과수원은 인공수분을 하지 않는다. 또 새가 사과를 쪼아 먹는다. 농약과 퇴비를 쓰지 않는 데다 자연환경 그대로 재배해 수확량도 일반 과수원보다 떨어진다.
○ 수확한 지 120일 지나도 싱싱
전 씨의 사과나무는 지난해 10월 말 5번째로 1만3000개의 사과를 선물했다. 당시 수확한 사과는 120여 일이 지난 5일에도 싱싱한 생명력을 자랑했다. 냉장보관이 아닌 실온보관이었지만 썩지 않았다. 전 씨의 자연사과는 일반사과보다 무게가 30% 정도 덜 나가고 단맛도 다소 떨어지지만 오랫동안 싱싱한 상태를 유지한다. 항암물질도 일반사과보다 두 배 정도 많다. 조재형 장성군농업기술센터 지도사는 “자연사과는 수확량이 적어 경제적으로 힘들다. 하지만 전 씨는 이 모든 어려움을 끝내 이겨낸 농부다”라고 말했다.
전 씨가 자연사과를 재배하게 된 계기는 일본 아오모리 현 기무라 아키노리(木村秋則) 씨의 조언을 받고서다. 기무라 씨가 재배한 사과는 오랫동안 썩지 않아 ‘기적의 사과’라고 불렸다. 하지만 일본 아오모리 현과 장성군은 기후 여건과 토양이 다르다. 장성은 아오모리 현보다 덜 추워 병해충 발생이 잦다. 전 씨는 더 튼튼한 사과나무를 만들기 위해 해마다 해외의 선진 농사법을 찾아 배우고 있다.
전 씨는 사과와 같은 농법으로 벼를 재배한다. 그가 자연농법으로 재배한 벼는 지난해 991m²(약 300평)당 470∼500kg을 생산했다. 일반 벼보다 5∼10% 정도 생산량이 많다. 전 씨는 사랑을 주고 키운 사과나무가 올해나 내년부터 더 많은 선물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