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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벽에 피로 쓴 ‘국정원’… 검사에 “더 볼일 없을것” 문자도

입력 | 2014-03-07 03:00:00

국정원 협조 조선족 자살기도 ‘긴박했던 한나절’




수술후 중환자실로… 생명엔 지장 없어 5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모텔에서 자살을 시도했던 국가정보원 협조자 조선족 김모 씨가 6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마친 뒤 중환자실로 이동하고 있다. 김 씨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어제 인사를 못 하고 와 문자메시지를 보냅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이제 볼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위조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진상조사팀 박영준 검사는 5일 낮 12시경 이런 내용의 문자를 받고 깜짝 놀랐다. 이날 오전 5시경까지 세 번째로 조사를 받고 돌아간 ‘국정원 협조자’ 김모 씨(61)에게서 온 것이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내용이어서 검찰은 곧바로 인근 서울 서초경찰서에 신고해 서초동 일대를 뒤지는 한편 김 씨의 위치추적을 요청했다. 휴대전화 위치추적 결과 김 씨가 서울 영등포구 내에 있는 것까진 알았지만 워낙 광범위한 지역이어서 정확한 위치 확인에는 실패했다. 김 씨가 자살을 시도하고 있는 순간 소재는 파악되지 않은 채 시간은 흘러갔다.

김 씨는 이날 새벽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영등포로 이동해 한 모텔에 숙박비 5만5000원을 내고 입실했다. 이때가 오전 5시 31분. 잠시 눈을 붙인 김 씨는 오전 9시 40분 모텔을 나갔다가 약 50분 뒤 돌아왔다. 모텔 직원이 술에 취한 김 씨를 발견하고 “어떻게 되십니까”라고 묻자 김 씨는 “손님입니다”라고 짧게 답하고 자신이 묵고 있는 5층 객실로 올라갔다.

이 모텔은 밤 12시 이후에 입실하면 최초 입실 시간으로부터 12시간 안에 퇴실하게 돼 있다. 하지만 김 씨가 오후 5시가 넘도록 나가지 않아 직원이 객실에 전화를 걸고 문도 두들겼지만 아무런 답이 없었다. 모텔 측은 이상하다 싶어 오후 6시 11분 112에 신고했다. 긴급 출동한 경찰은 방 안에 들어가 자살을 시도한 상황을 파악하고 119구급대에 출동을 요청했다.

발견 당시 김 씨는 객실에 있던 두 개의 침대 중 벽 쪽에 붙은 2인용 침대 한가운데서 러닝셔츠와 내복 바지를 입은 채 옆으로 누워 있었다. 오른쪽 목 부분이 커터 칼로 그어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출동한 119구급대원은 “의식이 또렷하지 않았지만 완전히 혼수상태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침대 맞은편 창 쪽 벽에는 ‘국정원 국○원’이란 단어가 피로 쓰여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두 번째 단어는 ‘국조원’으로 보이는데 피가 흘러내리면서 단어가 뭉개졌다”고 말했다. 국조원은 인터넷에서 떠도는 ‘국가조작원’의 줄임말인데, 김 씨가 어떤 의미로 쓴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욕실과 침대 근처엔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고 화장실엔 오물들이 변기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검찰 수사관은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지 약 한 시간 뒤인 오후 7시 10분경 모텔과 병원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측은 현장 조사를 마치고 돌아간 영등포경찰서 영등포역파출소에 찾아가 유서 등 확보한 물품을 수거해 간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 응급실에 간 경찰들에겐 “우리가 맡겠다”고 요구했다. 이후 경찰 측은 발견 당시 상황 등에 대해 “모른다”고 함구 중이다.

오후 6시 43분 서울 여의도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김 씨는 다음 날인 6일 오전 2시 중환자실로 올라갔다. 병원 측은 “(김 씨의) 혈관에 큰 손상이 없어 생명엔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중환자실로 옮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6일 오후 2시간 동안 수술을 받았다. 병원 측은 “턱 밑 침샘과 기관지가 손상됐으나 수술로 원상 복귀됐다”며 “상태가 심각하지 않아 7일경 일반 병동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씨 곁은 아들과 형으로 추정되는 남성 두 명이 지켰다.

신경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진선미 의원과 함께 6일 오후 5시 50분께 이 병원 중환자실을 찾아 주치의를 면담했다.

강은지 kej09@donga.com·백연상·권오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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