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3년… 119구조대 황재동 팀장이 회고하는 그때 그 참상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 센다이에서 구조활동을 했던 중앙119구조본부 황재동 팀장. 그는 “그 당시 구조활동은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이웃나라 일본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준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남양주=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4일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 중앙119구조본부에서 만난 황재동 현장지휘팀장(49·소방령)은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현장을 이렇게 기억했다. 황 팀장은 대지진 이튿날인 12일 1차 선발대에 이어 14일 군용기 편으로 2차 구조대 102명과 함께 미야기(宮城) 현 센다이(仙臺)에 도착했다.
현장은 참혹했다. 지진해일(쓰나미)은 도로와 건물을 삼켜버렸다. 흙투성이가 된 사진첩과 가재도구만이 이 주변이 주택가였음을 짐작하게 할 뿐이었다. 수많은 화재 폭발 재난 현장에 출동했던 황 팀장이었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한국 구조대는 센다이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끝내 생존자를 찾을 수 없었다. 바닷가의 한 학교 교실에는 어린이들의 가방만 쌓여 있었다. 그 옥상에선 쓰나미에 휩쓸린 것으로 보이는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진흙 속에 박힌 차량 안에선 뭔가 움직이는 듯한 물체가 보였다. 한참 진흙을 파헤쳐 문을 열었을 때 황 팀장은 힘이 빠졌다. 한 남성이 사이드브레이크를 잡은 채 숨져 있었다. 그렇게 구조대는 남성 12구, 여성 6구의 시신을 거뒀다. 이들을 천으로 감싼 뒤 예를 갖춰 묵념을 했다.
대지진 당시 러시아 미국 호주 독일 중국 등 16개국 880명의 구조대가 참여했다. 하지만 대부분 중도 철수했다. 쓰나미로 파괴된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에서 나온 방사성 물질 수치가 높아졌기 때문. 그럼에도 한국 구조대는 마지막까지 센다이에 남아 수색작업을 이어갔다.
황 팀장은 당시 센다이의 한 목조주택을 수색하던 때를 잊지 못한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근처에 가족사진이 떨어져 있었다. 아이의 글러브와 찌그러진 자전거도 보였다. 그 단란했던 가족이 어디로 갔는지 가슴이 먹먹했다. 요즘도 가끔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날 취재에 동행한 일본 아사히신문 나카노 아키라 서울 특파원은 황 팀장에게 “만약 동일본 대지진 같은 재해가 또 발생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언제든 다시 달려갈 것이다. 더이상 이런 가슴 아픈 재난이 없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