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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남들은 가만있는데 왜 나서서 계산해”

입력 | 2014-03-08 03:00:00


부부 모임이 끝날 무렵 한 남자가 벌떡 일어나 계산대로 향한다. 아내끼리 모여 앉은 무리에서 그의 배우자를 쉽게 알아맞힐 수 있다. 신용카드를 내미는 남자의 뒤통수에 레이저 눈빛을 발사하는 여자다.

모임에서 아내들이 싫어하는 남편의 대표적인 행동 가운데 하나가 ‘가벼운 엉덩이’다. 남들은 가만있는데 왜 나서서 계산을 하느냐는 것이다.

순번제로 돌아가며 계산을 할 경우에도 아내는 살림꾼답게 하나하나 따진다. 양 많고 값싼 메뉴를 엄선해 한 푼이라도 아끼려 들기도 하고, 때로는 화려한 만찬을 준비해 위세를 보여주려 할 때도 있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기막힌 절약’ 사례를 체험하고 나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야 만다. 아내들끼리 신경전이 벌어지면 모임의 장래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질 수밖에 없다.

남편 처지에선 그런 아내가 답답하다. 평소엔 부드러운 모성을 발휘해 잘 베풀고 돌봐주면서 왜 부부 모임에만 가면 그깟 몇 푼을 놓고 무궁무진한 뒤탈을 만드는 것인지.

하지만 아내의 주장을 들어보면 나름 일관성이 있다. ‘왜 남 좋은 일을 하느냐’는 것이다. ‘그럴 돈으로 우리 가족 또는 나를 위해 쓰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얘기다. 물론 아내들 간에 ‘놀라게 해주기’ 경쟁이 벌어졌을 때는 예외다.

‘나와 우리 가족’만 챙기려는 이런 속성은 여성 호르몬 옥시토신의 이중성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옥시토신의 영향으로 가까운 이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반면, 경계선 밖에 있는 이는 배려하지 않으려는 배타성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는 남성과 여성을 움직이는 동기가 다르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남성은 밥값을 부담함으로써 자기 능력을 과시하려 든다. 만날 얻어먹거나 짜게 굴다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한심한 인간으로 낙인찍히는 게 남자의 세계다.

반면 아내들의 세계에선 그런 일이 많지 않다. 밥값을 내겠다고 나섰다가는 ‘재수 없다’는 뒷말을 듣기 십상이다. 여성들 모임에선 더치페이가 일상화되어 있다.

그들에겐 ‘나만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남편’이 자랑이다. 한데 평소 그런 자랑거리 하나 만들어주지 않던 남편이 모임에선 180도 바뀌어 계산을 도맡으려 한다면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가벼운 엉덩이의 배신감을 경험한 아내에게, 남편의 체면이나 명분 같은 것은 ‘내 알 바 아닌 항목’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아내 앞에서도 밥값을 턱턱 내고 다음 부부 모임에도 의연하게 나오는 남자라면 진정한 능력자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그러다 언젠가는 ‘회비를 걷자’고 제안할 가능성이 높지만 말이다.

한상복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