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통독 이후 베를린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넘어가고 있는 수백만 명의 젊은 동독인. 통일 뒤 남한은 북한 주민들의 엑소더스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그래서 직접 쓰기로 결심했다. 통일이 가져올 무수한 문제 중 개인적으로 풀기 어렵다고 보는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해 보려 한다. 이에 대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면 통일은 대박보다는 쪽박이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첫째는 통일 이후 북한 지역의 공동화(空洞化)를 어떻게 막을지에 대한 해답이다. 통일이 됐다는 것은 김정은 체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북한 주민들은 필사적으로 남쪽이나 외국으로 나가려 할 것이다. 치안 불안이나 처벌 우려 때문이 아니라 외국에서 1년만 벌면 북한에선 엄청날 거액을 벌 수 있다는 단순한 경제논리 때문이다. 한국에 온 탈북자 2만6000여 명 대다수의 탈북 동기도 경제적 이유다.
한국에 오는 북한 주민들을 세계가 보는 앞에서 내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거대한 수용소를 만드는 것도 답이 아니다. 탈출에 필사적인 그들은 잡히면 운이 나빠 잡혔다고 생각하고 또 내려올 것이다. 그렇다고 탈출이 불가능한 수용소를 곳곳에 만든다면 그런 통일이 과연 ‘대박통일’일까. 만약 북한 주민들은 정 한국에 오기 어렵다면 북송돼도 처벌받을 공포가 없어졌으니 중국으로 갈 것이다.
북한의 공동화가 무서운 이유는 첫째로 북한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젊은 세대와 지식층부터 탈출할 것이라는 점이며 둘째는 해외에 나가 2년만 자리 잡으면 북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다. 통일 후 2, 3년만 지나면 북한은 공동화될 확률이 크며 그 이후엔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젊은이들이 떠나간 한국 농촌에 천문학적 예산을 퍼붓는다고 경제가 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북한 주민들의 탈출을 막으려면 떠나지 않은 사람에게 보조금을 주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으나 해외에 나가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이 되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돈을 써야 할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돈 대신에 일자리를 주는 방법도 있으나 그 일자리를 2, 3년 안에 만들어주어야 하니 그게 진짜 문제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은 빠져나간다.
공장은 빨리 건설할 수 있을지 몰라도, 북한엔 전력 철도 도로 항만 통신 등 공장 가동에 필요한 인프라가 형편없다. 통일 뒤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늦다. 그래서 토지와 인력이 거의 공짜인 지금 북한에 인프라를 건설하는 것은 통일을 대비한 최소한의 보험이 될 수도 있지만 문제는 북한 체제를 연장시킨다며 이를 반대하는 여론이다. 일리가 있어 더 넘기 어려운 장벽이다. 하지만 둘 다 싫어도 한 길은 선택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탈북자로 한국에서 살아본 경험상 한국의 배타성과 약자에 대한 무시는 심각하다. 남쪽으로 온 탈북자는 스스로 자신이 선택한 길이고, 사회적 소수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한다. 그렇다 해도 이미 한국으로 온 탈북자의 10% 정도가 외국으로 다시 떠났다. 북한 주민들이 자의가 아닌 뜻밖의 통일을 맞아 결집된 힘으로 남쪽의 차별에 맞선다면 상상하기 싫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안겨주면 북한 주민들이 고마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먹고사는 걱정에서 벗어난 인간이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차별과 멸시다. 통일 뒤 고맙다는 말보단 당장 북한 땅에서 나가달라는 목소리가 크게 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는가. 민족주의가 강한 북한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차별을 받아도 동족에게 차별 받는 것은 견디지 못한다.
상상이 어렵다면 한국에 돈 벌러 간 사람이 없는 집을 찾기 힘든 옌볜을 보라. 중국에서 반한 감정이 가장 높다. 바로 한국의 동족들에게서 겪은 멸시 때문이다. 통일 이후 남쪽 사람들이 북한에서 지금 동남아에서 일부 한국인이 보이는 것과 같은 차별과 멸시를 연출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존심 강한 북한 남성들이 딸과 누이들이 돈에 농락당하는 모습을 본다면 왜 이런 통일을 했는지를 후회하며 분노할 것이다.
영호남 갈등도 치유 못하는 남쪽이, 정쟁으로 지새우는 한국 정치권이 이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풀어낼 수 있을까. 그러나 해답을 내놓지 못하면 남북은 다 같이 통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위의 두 가지 문제 외에도 통일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경제는 그중 하나일 뿐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