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신문에 실린 베를리오즈 생전 지휘 모습.
이 곡은 바이올리니스트 외젠 이자이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2번입니다. 그런데 이 선율은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마지막 악장에도 나옵니다. 이 밖에 리스트의 피아노곡 ‘죽음의 춤’,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 차이콥스키 ‘만프레드 교향곡’…. 일일이 꼽기가 힘들 지경입니다. 단순하다면 단순한 멜로디가, 여러 대가의 작품 속에 반복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선율은 원래 중세 성가 중 진혼미사(레퀴엠)의 부속가(시퀀스) 시작 부분입니다.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분노의 날, 다윗과 시빌이 예언한 바와 같이 세상은 재로 변하리라.’ 무서운 가사를 통해 인간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을 경고한 것입니다.
중세 성가의 텍스트에는 복음과 구원의 장대한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유독 멸망과 죽음을 형상화한 선율이 널리 퍼져나간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저도 정답을 알지는 못합니다만 인간의 속성 자체가, 죽음을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프랑스 근대음악의 대가 미셸 플라송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을 지휘합니다. 마지막 악장은 주인공이 환상 속에서 마녀들의 광란에 뒤섞이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악장에서도 ‘분노의 날’ 선율이 인상 깊게 쓰입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