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집단휴진]
10일 의료계의 집단 휴진은 우려했던 의료대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네의원들이 휴진을 한 지역에서는 환자들이 발길을 돌리거나 먼 거리의 대형병원으로 몰리는 등 불편을 겪었다.
○ 동네의원 헛걸음 환자 속출
세 살배기 아들을 둔 정모 씨(35·경기 남양주시)는 이날 오전 가까운 동네의원 대신 차로 40여 분 떨어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가야 했다. 새벽부터 아들의 열이 39도에 육박했지만 가까운 의원은 휴진했기 때문이다. 근처 소아과에도 전화를 걸었지만 받는 곳은 없었다. 정 씨는 “동네에 있는 종합병원은 환자가 몰릴 것 같아 차라리 전공의들이 휴진을 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서울의 대학병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휴진 안내문도 없이 문을 닫은 병원에서는 환자들의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서울 양천구의 한 내과를 찾은 60대 여성 곽모 씨는 “감기 때문에 왔는데 휴진 안내문도 없어 당황스럽다”며 “환자를 볼모로 삼고 자기 이득을 챙기는 의사들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성토했다.
교수, 전임의 등 기존 의사들이 전공의의 공백을 메운 종합병원 진료는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됐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 필수 인력은 휴진에 동참하지 않았고, 병원별로도 전공의의 절반가량은 병원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빅5 병원(서울대, 삼성서울, 서울성모, 서울아산, 세브란스병원) 중 유일하게 전공의들이 휴진에 동참한 세브란스병원의 류성 홍보팀장은 “신촌과 강남 병원을 합쳐 전공의 800여 명 중 휴진 참여자는 200여 명에 그쳤다”며 “전임의와 교수들의 부담이 약간 늘었지만, 환자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진료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 종합병원에서는 동네의원 휴진 여파로 환자가 몰려 대기 시간이 늘어나기도 했다. 전공의가 80% 이상 휴진에 동참한 서울의 한 대학병원은 진료과에 따라 오전과 오후 회진 시간을 한두 시간 늦추기도 했다.
정부는 휴진 참여율이 당초 예상(30% 이하)보다 낮은 20.9%로 최종 집계되자 안도하면서도, 엄정 대응을 한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전국의 보건소, 건강보험공단 지사 인력을 투입해 휴진한 동네의원을 단속하는 데 전력을 쏟았다. 문을 닫은 병원 중 이날 업무 개시 명령을 거부한 병원에는 11일 업무정지 처분 예고장을 발송한다. 이후 10일 이내에 적당한 해명을 하지 못하는 의원에는 최대 15일까지 업무정지 행정처분을 내릴 예정이다.
복지부는 영업정지와 함께 의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형사고발 조치도 진행하기로 했다. 의료법 52조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게 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해당 의사가 벌금형 이상의 판결을 받으면 면허정지를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된다”며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불법 파업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휴진율이 29.1%에서 20.9%로 낮아진 데 대해 “현장 점검 결과 오후에 다시 문을 연 병원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집계와 의협 추산치(49.1%)가 2배가량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해 권덕철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의협 수치는 1∼2시간만 휴진한 병원들까지 추산치에 합산하는 등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 반면 복지부는 직원들이 직접 전수조사한 집계”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