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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거리는 안가”… 강남 귀가전쟁 뒤엔 ‘조폭택시’ 있었다

입력 | 2014-03-13 03:00:00

‘강남대로 독점’ 3개조직 22명 적발




조폭형 택시운전사가 지난달 22일 서울 강남역 인근 강남대로에서 비조직원 택시운전사에게 “차를 빼라”고 협박하는 장면. 강남경찰서 제공

“아 ×발! 아저씨! 차 빼!”

슬리퍼 차림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한 택시운전사가 12일 오전 1시 45분경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강남대로변에 차를 세워두곤 밖으로 나와 뒤에 있던 다른 택시운전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인근에 있던 택시 두 대를 내쫓은 뒤 경기 용인에 간다는 20대 여성 취객에게 “5만 원에 가주겠다”며 호객행위를 했다. 비싼 요금에 망설이던 여성은 주변을 떠돌았지만 대로변에 서 있는 다른 택시도 비슷한 액수를 불러 ‘울며 겨자 먹기’로 택시를 탔다.

서울 강남역을 가로지르는 강남대로 일대는 밤마다 택시들이 늘어서 있지만 정작 택시 타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대로변과 골목을 장악한 택시들이 가까운 지역에 가는 손님은 승차거부를 하고 경기 인천 등 장거리 손님만 골라 태우기 때문이다. 어렵게 택시를 타더라도 미터기 요금 대신 과도한 금액을 요구하기 일쑤다. 길게 늘어선 택시들로 인해 밤마다 고질적인 교통체증도 겪어 왔다.

서울 강남경찰서 교통범죄수사팀은 ‘강남상조회’ 등 3개 조직을 결성해 강남역∼신논현역 구간 강남대로 일대를 독점하고 과다요금과 합승 등 불법 행위를 강요해 온 조폭형 택시운전사 이모 씨(39) 등 22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집단·흉기 등 협박)과 도로법 위반,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들은 ‘회장’ ‘고문’ ‘실장’ 등의 직함을 두고 상조회를 사칭한 조직을 운영하며 불법 독점영업을 해 왔다.

이번에 적발된 조폭형 택시운전사 22명 중 21명이 전과자였고 조직폭력배 출신까지 있었다. 강도상해와 특수절도, 준강제추행 등 강력범죄나 성범죄를 저질렀던 운전사들도 포함됐다. 이들은 2011년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조직별로 독점한 구간에 일반 택시운전사들이 진입하면 집단으로 협박하고 폭행해 내쫓아 왔다. 피해를 호소한 택시운전사만 510여 명에 이른다. 경기 택시운전사 민모 씨(60)는 이들의 독점구역에 차를 댔다가 기사 3, 4명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전치 6주의 부상을 입었다. 서울시 공무원 최모 씨(62)는 승차거부를 단속하다 우르르 몰려온 운전사들에게 협박과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강남역 일대에는 조폭형 택시운전사들의 만행에 택시를 잡지 못하는 여성 취객들을 노린 ‘콜뛰기(사설 택시)’ 기사까지 등장했다. 강남경찰서 양유열 경사와 변상식 경장은 지난달 15일 오전 2시 30분경 암행 단속 때 20대 여성 취객에게 친한 척 접근해 어깨를 감싸고 차로 유인하던 백모 씨(38)를 적발했다.

백 씨는 강남대로변에 카니발 승합차를 세워두고 여성 취객에게 접근해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태워 왔다. 백 씨의 휴대전화에선 ‘개봉동 아가씨’ ‘○○○(이름) 서울대입구’ 등의 이름으로 저장된 여성의 연락처가 20여 개 발견됐다. 백 씨는 여성들에게 “드라이브 하자” “차 한잔 하자”는 식으로 만남을 요구해 왔지만 성범죄의 증거는 없어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 혐의 등으로 불구속 입건됐다. 양 경사는 “조폭 택시로 혼란스러워진 강남역 일대 교통질서를 반드시 정상화하겠다”며 “만취 여성을 노리는 불법 콜뛰기는 언제든 강력 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동주 djc@donga.com·임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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