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는 자살전 정신질환 경험… ‘사회적 낙인’ 두려워 병원 꺼려
최모 씨(51·여)는 매년 2, 3차례씩, 20년 넘게 자살 시도를 했다. 남편의 외도와 폭력에 시달리던 그는 분노가 극에 달할 때마다 가족이 보는 앞에서 자살하려 했다. 가족들이 "잘못했다"고 빌면 시도를 멈추는 식이었다. 베개 밑에 늘 칼과 넥타이를 감춰둘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지만 20년 동안 한 번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지 않았다.
최 씨 남편은 "정신과에 가면 평생 정신병자로 낙인찍힌다"고 여겼다. 최 씨는 2012년 아들과 다툰 끝에 목을 매 자살했다. 가족들은 최 씨의 행위를 일상적인 반복 행위로 받아들였지만 정작 최 씨는 20년 넘게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분노를 쌓아온 것이었다. 이동우 인제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 번의 자살 시도도 심각한 수준의 질환이므로 첫 시도 당시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주대 연구진과 동아일보 취재팀이 심리 부검한 60명 중 40명(66.7%)은 자살 전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있었다. 40명 가운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충분한 진료를 받은 사람은 6명(15%)에 불과했다.
정부는 지난해 4월부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을 받더라도 건강보험 청구 기록에 정신질환 대신 '일반 상담'으로 기록을 남길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지난해 4월 이후 처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은 환자에게만 해당될 뿐 이전에 진료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 다시 병원을 찾는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게다가 약물 처방을 받으면 정신 질환 기록이 남게 돼 있어 약이 긴급히 필요한 사람이 오히려 병원을 찾지 않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심한 정도에 상관없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병력이 있다는 이유로 민간 보험 가입이 거절되는 것도 문제다. 지난달 6일 신의진 의원(새누리당)은 보험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가벼운 우울증 등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은 국민의 보험 가입을 거부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정당한 이유'의 기준이 모호해 가입 거절을 막는 데 한계가 있을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심리적 부검 프로젝트로 자살률을 절반 가까이 줄인 핀란드는 노인 등 사회 취약계층을 상대로 정기적인 상담을 진행했다. 자살 징후가 포착되면 그 즉시 전문 상담기관이 개입해 자살을 막았다. 한국도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손효주 hjson@donga.com·김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