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생물자원전쟁이다]<上>평창에 감도는 전운
지구상의 모든 생물종과 이들이 서식하는 생태계 그리고 생물이 지닌 유전자를 보호하기 위해 세계는 ‘생물 다양성협약’을 채택했다. 이는 생물자원에 대한 각국의 주권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면서 생물자원 제공국과 이용국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동아일보DB
2009년 전 세계가 신종플루 공포에 떨고 있을 당시 유일한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만든 스위스 제약사 로슈는 수조 원을 벌었다.
타미플루의 원료는 중국 남부지방에서 자라는 식물 ‘팔각회향’. 중국은 원료식물을 제공했지만 타미플루 판매로 거둔 이익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오렌지 농가가 음료수 업체에 오렌지를 제공했지만 대금을 하나도 받지 못한 격이다.
○ 나고야의정서 발효되나
올해 10월 6일 우리나라 평창에서 ‘제12차 CBD 당사국총회’가 열린다.
193개국 2만여 명이 참석하는 이번 평창 총회의 규모는 2018년 평창에서 열리는 겨울올림픽보다 2, 3배 크다. 그만큼 세계가 주목하고 있지만 국내에서의 관심은 부족하다.
평창 총회의 관전 포인트는 나고야의정서가 공식 발효돼 ‘제1차 나고야의정서 당사국회의(COP-MOP1)’가 열릴 수 있을까에 있다. 하지만 전망은 어두운 편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비준을 마친 나라는 29개국에 불과하다. 자원이 풍부한 개발도상국 위주로 비준을 마쳤지만 자원을 많이 수입하는 선진국들이 비준을 미루고 있는 것. 선진국 중 비준을 마친 나라는 해양자원이 풍부하고 국제종자저장고를 보유한 노르웨이가 유일하다.
유럽연합(EU)이 다음 달 비준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EU는 1개국으로 계산된다. 더군다나 28개 EU 회원국 중 비준할 나라는 많아야 10개국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나고야의정서를 추진한 일본도 비준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어서 평창 총회 전에 의정서가 발효될 가능성은 낮은 것이 사실이다.
○ 이익공유금 폭탄보다 무서운 소송전
우리나라는 자원 제공국이라기보다는 생물자원을 수입하는 선진국 쪽에 더 가까운 만큼 비준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의정서가 발효될 경우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의정서가 발효되면 해외의 생물자원을 이용하는 절차가 까다로워진다. 외국의 생물자원에 접근하거나 연구하려면 자원 제공국에 사전통보승인(PIC)을 받아야 하고, 산업화하게 되면 자원 제공국과 상호합의조건(MAT)에 따라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의정서 발효를 전제로 국내 바이오산업계가 외국과 공유해야 하는 금액은 올 한 해만 최소 3892억 원에서 최대 5096억 원에 이른다.
더 심각한 점은 의정서 발효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할 경우 이익공유 소송은 물론이고 특허취소 소송 등 예기치 못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생물자원에 유전자원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한약재처럼 외국과 경쟁하는 분야에서 토종 자원의 유전정보를 사전에 확보하지 못한다면 유전자원에 대한 주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김성욱 바이오인프라총괄본부장은 “의정서 발효 이후 원료 수입 과정이 복잡해지고 원료 가격 상승까지 예상되는 만큼 국내 연구기관과 산업체가 입을 피해는 더 커질 것”이라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생물다양성협약 ::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종을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해 1992년 리우 회의에서 채택된 국제협약으로, 생물자원에 대한 국가의 주권을 인정하는 계기가 됐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