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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세 김영주, 北대의원 또 선출

입력 | 2014-03-15 03:00:00

형 김일성 대신 숙청 앞장… 王은 못 돼도 예우는 유지
피묻힌 업보… 한때 유배되기도




‘왕이 되지 못한 북한의 세조.’

북한 김일성 주석의 동생 김영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명예부위원장(사진)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92세인 그는 최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체제의 첫 최고인민회의 대의원(한국의 국회의원 격) 투표에서 다시 선출됐다. 이에 한국 정부 내부에서조차 “김영주가 아직도 살아 있었구나”라는 반응이 나온다.

김영주는 이른바 백두혈통(김일성의 직계)이 아니지만, 김일성의 방계 가족까지 포괄하는 ‘만경대 가문’ 1세대의 유일한 생존자다. 1967년 당 핵심기관인 조직지도부의 수장이었던 김영주는 김일성의 마지막 남은 라이벌 파벌이던 갑산파의 박금철, 이효순, 김도만 등을 제거하는 데 ‘행동대장’ 역할을 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에 앞서 한국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만나 사전 조율하는 역할도 했다. 이 성명의 이행을 위해 설치된 남북조절위원회의 북측 위원장을 맡아 북한의 실세임을 확인시켰다.

그러나 1974년 김일성이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김영주는 한직인 정무원 부총리로 밀려났다. 김정은 체제의 2인자로 부상한 최룡해 총정치국장의 아버지 최현을 비롯한 빨치산 원로들도 ‘장자계승론’을 내세우며 “갑산파 숙청 때 손에 피를 묻혀 본 김영주가 권력을 잡으면 피의 숙청이 또 일어난다”고 우려했다고 한다. 이후 김영주는 가족과 함께 자강도 강계로 유배당하자 평양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돌멩이를 던지며 원통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는 1993년에야 일종의 명예직인 부주석 자리로 복귀했다. 이는 ‘후계자 김정일’의 입지가 확고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김영주는 1998년부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겸 상임위 명예부위원장을 맡아왔다.

김영주가 ‘즉위하지 못한 세조’가 된 데에는 정통성의 한계 탓도 있다는 분석이 있다. 일제강점기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으로 활동한 반면 김영주는 ‘너는 살아남아서 대를 이어야 한다’는 형 김일성의 권유로 1932년 일본 괴뢰정부 만주국에 투항했다. 김영주는 일본 헌병대의 하수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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