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6일 일요일 맑음. 겨울왕자. #100 Johnny Winter ‘Johnny B. Goode’(1969년)
검은 카우보이모자, 긴 은발과 초점 없는 눈동자. 관객 60명이 전부인 구식 바 한쪽으로 낡은 로데오 기계가 보였다. 좀 전에 윈터는 매니저의 부축을 받아 무대에 올랐다.
전설의 현현은 서글펐다. 1960, 70년대 폭풍 같은 연주로 우드스톡 페스티벌 무대를 불태울 때 그는 ‘위대한 텍사스 블루스 연주자’로 불렸다. 비비 킹과 협연하면 기립박수는 윈터의 차지였다. 그의 또 다른 별칭은 ‘세상에서 가장 하얀 블루스 기타리스트’. 흑인이 주도하던 당시 텍사스 블루스에서 선천성 색소 결핍증을 지닌 윈터는 튀는 존재였다. 타고난 은발과 창백한 피부가 윈터라는 성에 어울렸다.
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자니 윈터: 다운 앤드 더티’가 잠시 후인 이날 낮, 이곳 SXSW 필름 페스티벌에서 처음 공개될 참이었다. 30년간의 약물 중독으로 망가진 육신. 그는 ‘예스’ ‘노’만 겨우 말할 정도로 쇠약해졌지만 힘겨운 재활로 예전 노래와 연주를 되찾았다.
밤이 깊어가는 라우디스 바에 마침내 ‘자니 비 굿’의 흥겨운 첫 소절이 터져 나왔다. 척 베리의 1958년 원곡을 윈터가 특유의 거침없는 연주와 노래로 재해석한 것. ‘고! 고!/고! 자니, 고!/고! 고!/자니 비 굿!’ 후렴구를 함께 외치는 객석의 온도가 끓는점에 달했다. 자니는 웃지 않았다. 환호를 빗발처럼 튕겨내는 자니의 무표정한 열창 뒤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듯했다. 카메라는 없었다. 겨울은 끝났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