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1946∼ )
나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
대학 보내달라고 데모했다
먹을 줄 모르는 술에 취해
땅강아지처럼 진창에 나뒹굴기도 하고
사날씩 집에 안 들어오기도 했는데
아무도 아는 척을 안 해서 밥을 굶기로 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우물물만 퍼 마시며 이삼일이 지났는데도
아버지는 여전히 논으로 가고
어머니는 밭 매러 가고
형들도 모르는 척
해가 지면 저희끼리 밥 먹고 불 끄고 자기만 했다
며칠이 지나고 이러다간 죽겠다 싶어
밤 되면 식구들이 잠든 걸 확인하고
몰래 울 밖 자두나무에 올라가 자두를 따먹었다
동네가 다 나서도 서울 가긴 틀렸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낮엔 굶고 밤으로는 자두로 배를 채웠다
내 딴엔 세상에 나와 처음 벌인 사투였는데
어느 날 밤 어머니가 문을 두드리며
빈속에 그렇게 날것만 먹으면 탈난다고
몰래 누룽지를 넣어주던 날
나는 스스로 투쟁의 깃발을 내렸다
나 그때 성공했으면 뭐가 됐을까
자두야
1960년대의 한 농촌 소년 투쟁기가 가슴 짠하고 따뜻하게 펼쳐진다. 화자는 아들만 있는 집의 막내인 듯하다. 양 부모 건재하고 장성한 아들이 여럿인데, 공부도 잘했을 막내가 ‘사투’를 벌이며 소원하는 대학교에 보낼 형편이 안 된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데, 당최 비빌 데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 착했던 아이가 ‘먹을 줄 모르는 술에 취해/땅강아지처럼 진창에 나뒹굴기도 하고/사날씩 집에 안 들어오기도’ 해도, 방문을 걸어 잠그고 단식투쟁을 해도 모르는 척할 수밖에. 고학을 할 각오로 집을 떠나지 않은 것을 보니 화자는 독한 데 없는 순둥이였던가 보다. 어쨌든 대학교는 이쯤 열망하는 사람이 가야 하는 건데 공부에 뜻이 없고 집이 어려워도 학자금 대출을 받으면서까지 대학에 다니는 오늘의 청소년도 가엾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