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기흥 논설위원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믿을 수 없을 만큼(incredibly) 어려울 것이다… 만일 한반도에서 싸워야 한다면 믿을 수 없을 만큼 위험할 것이다.”(레이먼드 오디어노 미 육군 참모총장, 13일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강연)
미국이 북한의 위협을 심각하게 본다는 건 뉴스가 아니다. 그러나 이번 경고엔 신경이 쓰인다. 혹시 최근 실시한 한미 연합군사연습 키리졸브(2월 24일∼3월 6일)의 워게임 결과를 두고 한 말 아닐까. 이라크전쟁 때 가장 위험한 지역을 맡아 사담 후세인을 붙잡는 용맹을 떨친 오디어노 총장이 왜 ‘믿을 수 없을 만큼’이란 말을 거듭한 걸까. 만성적인 한반도 위기에 둔감해졌어도 “예산 따내려고 겁주는 소리”라고 넘기기 어렵다.
하지만 북한이 핵을 사용하지 않아도 개전 초엔 한미가 상당히 고전하고 피해도 상상 이상일 걸로 보는 군사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그동안 “북한은 경제난 때문에 전면전을 할 능력이 없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근래엔 기습도발로 미국 증원군이 개입할 틈을 주지 않고 남쪽을 며칠 내에 점령할 준비를 치밀히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최근 각종 미사일과 방사포를 잇달아 쐈다. 이 중 사거리가 150km가 넘는 300mm 방사포에 대해 한 군사전문가는 “한국의 주요 공군기지를 타격해 전투기들이 이륙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서울을 쉽게 함락시킬 수 있는 엄청난 무기”라고 평가했다. 우리 군은 이런 방사포와 장사정포로부터 국민을 지킬 수단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할 우려가 크다. 북이 생화학무기를 쓰면 반격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란 비관론도 있다.
정부는 북의 80% 수준이라는 우리 군사력의 열세를 첨단 무기로 만회한다는 계획이지만 미덥지 않다. 국산 대잠(對潛)유도미사일 홍상어는 명중률이 66.7%에 불과해 다음 달 최종 시험 발사에서 실전 운용 여부가 결정된다. 소총수에겐 백발백중을 요구하면서 정밀유도무기는 명중률이 75%면 적합 판정을 한다. ‘명품무기’라던 K-11 복합소총은 잦은 결함으로 논란을 빚다 실전 배치 4개월 만에 신관 폭발 사고가 났다. K-2 차기전차 흑표는 핵심 부품인 국산 파워팩의 결함으로 개발시한을 4차례 연기한 끝에 6월 독일제를 장착해 겨우 실전 배치한다. 최신예 잠수함 손원일함은 작전이 불가능할 정도의 소음 때문에 몇 년간 정비를 받았다. 건조 비용이 5000억 원 이상 든 아시아 최대 상륙함 독도함은 지난해 발전기 침수와 화재로 제대로 운용하지 못했다. 독일제 중고 패트리엇 PAC-2 미사일도 레이더 3대가 고장 나 가동이 몇 달 중단됐다.
최근에는 주력 전투기인 KF-16과 국내 개발 기동 헬기인 수리온, K-9 자주포, K-21 장갑차 등의 부품에 대한 시험성적서를 241개 방산업체가 조작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래도 이길 수 있으니 국민은 안심하시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