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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이상훈]‘금융약자’ 위한 보안은 없다

입력 | 2014-03-19 03:00:00


이상훈 경제부 기자

신용카드 사용자 A 씨는 벌이가 신통치 않아 종종 카드 대금을 연체한다. 신용등급은 전체 10등급 중 6등급이다. 무심코 받은 카드론 대출은 이자가 날이 갈수록 불어간다. 어느 날 대출상담사라는 낯선 이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 고객님, △△카드에서 대출 받으셨죠. 저희가 제공하는 금리 싼 대출로 갈아타세요. 수수료만 조금 내시면 됩니다.”

말로만 듣던 통대환대출 사기다.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바꿔 준다고 선전하지만 대부분이 이름도 생소한 대부업체 대출을 알선해 준다. 이런 돈을 빌려 쓰면 신용등급이 더 떨어지고 이자는 오히려 늘어난다.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로 전락해 빈곤의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도 높다.

최근 유출된 1억400만 건의 신용카드 고객 정보의 대부분이 이런 불법 대출을 알선하는 중개업자들에게 넘어갔다. 피의자들은 여러 차례 정보를 빼내 이를 수백만 건씩 편집해 대출업자들에게 넘겼다. 업자가 보다 정교한 정보를 요구하면 다시 카드사 서버에 접속해 연체정보, 신용등급 등과 같은 ‘고급 정보’를 빼냈다. 허위로 카드 결제를 하고 현금을 받아 챙기는 이른바 ‘카드깡’ 대출업자도 불법으로 유출된 정보를 건네받은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 대출업자들은 불법으로 정보를 빼내 카드 빚에 시달리는 경제적 약자들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저소득층은 소득이 낮고 모아놓은 돈이 부족하다 보니 가족 중 한 명이 아프기라도 하면 금세 빚의 수렁에 빠진다. “빚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달콤한 유혹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도 많다. 금융지식을 익힐 기회가 적고 교육 수준이 낮은 경우도 많다. 사고가 터진 뒤에 금융당국이 내놓은 이런저런 개인정보 보호나 사기 피해 대책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도 있다.

일반 기업이나 금융회사들은 소득이 높은 부자들을 핵심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VIP 마케팅’을 펼친다. 음지에서 활동하는 금융 사기범들은 거꾸로다. 벼랑 끝에 선 ‘금융 약자’를 노린다. 이들에게는 ‘개인정보 암시장’에서 유통되는 정보의 가치도 얼마나 많은 부자가 있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취약계층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불법 대출업자들에게는 빚이 많고 연체기간이 길고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VIP’인 셈이다. 억대 연봉에 자산을 많이 가진 부자들에게 대출 권유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대출업자들은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카드사들은 고객 정보 유출 사고가 터지자 “금전적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피해가 발생하면 전액 보상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더는 나올 대책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러 차례 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개인정보 보호 대책 중에서 정보 유출에 따른 2차 피해에 가장 취약한 금융약자를 위한 대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금융당국이 다음에 내놓을 대책은 저소득층에게 한발 더 다가가는 금융보안 교육과 금융약자를 위한 ‘맞춤형 보안 대책’이어야 한다.

이상훈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