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진 8단이 대국하고 있는 모습. 바둑TV 제공
프로기사들의 바둑공부 모임인 '소소회'가 전에 사무실로 쓰던 공간이다. 그런지 꽤 널찍했다. 도장에서 바둑 공부를 한다는 젊은 프로기사 여러 명과 계단에서 마주쳤다. 도장 안에는 그와 김주호 8단, 입단 준비생 4명이 바둑판 앞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원생들은 초등학교 3학년인 김주영 군과 입단을 준비 중인 김다영 양(프로기사 김성래 5단의 둘째딸이며 김채영 초단의 동생), 그리고 한국기원 연구생인 서문형원 군과 문유빈 군.
한 8단에게 "학생이 너무 적은 것 아니냐"고 묻자 "이제 문 연지 한 달밖에 안됐는데 4명은 괜찮은 성적"이라고 답했다. 그러고는 그는 "올해 말까지 원생을 10명 이상으로 늘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김주영 군을 예로 들겠다. 그는 바둑을 둘 때 싸움을 잘한다. 50집을 이기고 있는데도 싸우다가 질 뻔한 적도 있다. 그게 그의 강점이다. 싸움을 잘하면서도 집 계산에 밝은 것이 그의 장점이다. 그런데 포석에 약하다. 이 부분은 점차 실전을 쌓아 가면 나아지리라 본다. 김 군은 한 달 전 인터넷 4단에서 지금은 6단으로 실력이 늘었다. 싸움에 능하고 후반에 강한 그의 장점을 키워주는 게 나의 임무라고 본다. 이세돌 9단도 포석에는 약하지만 싸움은 절정 고수 아닌가. 그게 그의 스타일이다. 권갑용 사범님이 이세돌 스타일을 키워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도 김 군에게 '포석이 이게 잘못됐다, 저게 옳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그의 것이 되질 않는다. '사범 생각에는 이런데…'라는 식으로 유도하는 정도랄까. 주입식은 바둑 실력이 약할 때는 빨리 늘 수 있지만 어느 단계에 오르면 한계가 있다. 내가 프로가 되기 위해 경험하고 사범 생활을 5년간 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한종진 8단이 김주영 군에게 사활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는 모습. 그는 사활이 바둑의 기초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내가 배울 때만 해도 이창호 신정석이라는 게 있었다. 선배들로부터 이렇게 둬야 한다는 말을 들었고, 많은 프로기사들도 그렇게 두는 게 유행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그 정석은 요즘에 프로들 대국에서 1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다. 지금 유행하는 정석도 20년 뒤에는 사라질 수도 있다. 지금까지 두어지고 있는 정석은 슈샤쿠가 소목에서 마늘모로 둔 것 정도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원생들이 자신들의 생각대로 둔 수는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지금 정석과 다르다고 해서 사범이 '틀리다'고 말하면 원생들의 여러 가능성을 꺾을 수도 있다."
한 8단은 "당시 사범으로 많은 좋은 재목들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고 말했다. 지금 프로가 된 이형진 민상연 박창명 백찬희 오유진 설현준 등이 그에게서 배웠다. 그는 "입단 문턱에 있던 이형진이나 민상연에게는 바둑을 가르친다기보다는 형처럼 경험을 들려주고 예민한 마음 상태를 다독이는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또 지금 왜 견뎌야 하는 지를 내 경험을 빗대 조언해줬다.
2011년 상반기 허장회 도장과 양재호 도장, 유창혁 도장이 합쳐져 충암도장으로 출발한 뒤에도 그는 동료 사범들과 신진서 황재연 유병용 강병권 최영찬 등을 입단시켰다.
지난해부터 그는 독립적으로 자신의 교육방법을 실천해보고 싶었다. 결정을 내리고는 도장 자리를 물색하는 한편 같이 일할 사범도 수소문했다. 주위에서 김주호 9단을 추천받아 "삼고초려는 아니지만 몇 번 제의한 끝에" 겨우 허락을 얻어냈다. 김 9단은 지난해 바둑리그 포스코켐텍의 5장으로 선발돼 8승 4패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가 처음에 사범을 거절한 이유는 "좀더 바둑에서 성적을 내고 싶었다"는 것. 현재 국수인 조한승 9단도 기꺼이 동참했다.
조 9단은 도장에 종종 나와 원생들과 스파링을 하기도 한다. 한 8단은 "며칠 전 김 사범과 내가 국수전 예선에 출전하는 바람에 자리를 비웠을 때 조 사범이 도장에 나와 학생들을 가르쳤다"며 "요즘 조 9단의 성적이 떨어진 것이 도장 일 때문인가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바둑리그 넷마블 한종진 감독(뒤쪽 가운데)이 선수들과 바둑을 검토하고 있는 모습. 왼쪽이 이창호 9단, 오른쪽이 박영훈 9단. 바둑TV제공
전에 어떤 젊은 기사가 도장을 냈다가 실패한 일도 있는데 자신이 있느냐고도 물었다. 지금처럼 충암도장 양천대일 장수영도장 권갑룡도장 골든벨 이세돌도장 등 바둑 도장이 많은 상황에서 '경솔한 게 아니냐'는 의도가 들어있는 질문이었다.
한 8단은 "요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 즐겁다"고 대답했다. 설혹 실패해도 후회가 없다는 뜻으로도, 자신이 있다라는 뜻으로도 들렸다. 그는 "바둑을 가르치다 보면 덤으로 자기의 실력도 는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창호 9단이나 이세돌 9단을 보면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실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두 고수는 정점에 올랐던 기사들이라 하락하는 게 당연하지만 나는 아직 정점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실력이 늘 수 있다. 엊그제 김승준 사범이 41세의 나이에 바이링배 본선에 올라간 것은 중국 우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그의 꿈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첫째로 바둑 성적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전남 여수 출신인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에게서 바둑을 배우고(그는 지금 아버지에게 9점을 접어주고도 이긴다) 중학교 2학년 때인 1993년 서울로 바둑 유학을 왔다. 3년 만인 1996년 안달훈 9단과 입단했다. 그는 "홀가분했다. 바둑 공부가 지겨워 실컷 놀았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눈에 띄는 성적을 내지는 못했고 성적에 대한 갈증이 있는 듯했다.
또 "멋진 기사를 키워내고 싶다"는 게 그의 두 번째 바람이었다.
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