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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쟁론]한국은행 역할

입력 | 2014-03-21 03:00:00


《 19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했습니다. 이 후보자는 “지금의 통화정책(금리수준)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경제상황을 잘 고려해 판단했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한은이 경제성장 등에서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문에 대해서는 “한은이 경제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본연의 책무인 물가안정을 지키는 범위 내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발언으로 비춰 보건대 한은의 급격한 정책변화는 없을 듯합니다. 하지만 한은의 역할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도 많습니다. 최근의 경기침체와 관련해 경기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이지요. 실제로 요즘 선진국 중앙은행의 역할도 적극적인 경제 활성화 기조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중앙은행까지 경제 활성화에 나서면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습니다. 새 총재 취임을 계기로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와 선정훈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두 전문가의 의견을 통해 한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

▼ 韓銀은 물가-금융안정의 파수꾼이어야 ▼

선정훈 건국대 경영대 교수

한국은행법에 명시된 한국은행의 설립 목적은 줄곧 물가안정이었다. 그러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후인 2011년 금융안정이라는 목적이 추가되었다. 한국은행의 설립 목적에 비춰 보면 우리나라 통화정책의 목표는 거시경제정책이라는 큰 틀 내에서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달성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경제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동안 우리나라의 통화정책은 물가안정의 목표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부 및 금융감독당국과의 정책 조화를 통해 금융안정, 경제성장 등 다른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 수행돼 왔다. 대표적인 예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후 신속하게 큰 폭의 기준금리 인하(2008년 10월 5.25%에서 2009년 2월 2.0%로 4개월 만에 3.25%포인트 인하)를 단행해 금융시장 불안이 실물경제 위축으로 이어지고, 이에 따라 금융시장 불안이 더욱 증폭되는 악순환의 발생을 차단했던 것을 들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대불황에 직면한 주요 선진국들은 재정 여력이 소진돼 재정정책을 펼 수 없고 명목금리가 제로하한까지 도달해 정책금리 조정이 어렵게 되자, 중앙은행이 국채 매입 등의 방식으로 시중에 통화를 직접 공급하는 양적완화 정책까지 써가며 경제 활성화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경제구조가 저성장, 저물가 구조로 바뀌고 있으므로 한국은행도 선진국 중앙은행들처럼 경기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행의 경제 활성화 역할은 어디까지나 물가안정이라는 주된 목표가 침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그 이유로 우선 통화정책이 물가안정, 금융안정 및 경제 활성화라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정책목표들 간의 상충, 정책 유효성의 제약 등이 존재하므로 복수의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수의 정책수단이 필요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의 책무에 금융안정을 포함시킨 국가들이 현재 ‘거시건전성’ 확보를 위한 별도의 정책수단 도입을 검토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울러 경제규모가 미국처럼 크진 않지만 자본 유출입이 자유로운 우리 경제의 특성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가 지속돼 2.5%의 현행 기준금리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은 앞으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추가적으로 펴는 데 제한요인으로 작용한다.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명목금리의 하한이 어디라고 단정지어 말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그 하한이 기축통화를 보유한 선진국들처럼 제로하한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우리의 금리수준이 낮아져 선진국의 금리수준과 같아지면 대규모 자본유출이 발생하고, 이 자본유출로 원화가치 하락과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로 이어지며 심한 경우 외환위기까지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원화가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완화적 통화정책을 통해 증가된 통화량이 국내에 머무르면 기대물가를 상승시키고 부동산을 비롯한 실물자산의 가격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원화가 기축통화라면, 증가된 원화가 역외에서 원화 대출 또는 통화 스와프 거래를 통해 일부 소화될 것이므로 전부 국내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완화적 통화정책의 추가적인 추진에 한계가 있음을 감안한다면 실물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부의 재정정책 및 규제완화 정책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통화정책 또한 물가안정 목표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런 정책을 뒷받침하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통화정책을 정부가 아닌 물가안정이라는 책무가 부여된 독립된 중앙은행에 맡겨두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경기가 과열될 때 경제의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물가안정과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역할이 중앙은행에 부여될 때 경기 과열 시 우리 경제의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필자는 떨칠 수가 없다.

선정훈 건국대 경영대 교수

※ 필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파생상품학회 감사와 금융감독원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 저금리시대, 韓銀도 경제 활성화에 나서야 ▼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

새 한국은행 총재에 거는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한은은 지난 4년 동안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진 애를 썼지만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통화당국이 시장에 밀려 뒷북치기로 기준금리를 변경하거나, 경기가 바닥을 기는데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 활성화는 늘 뒷전이었다.

이렇듯 통화정책이 손을 놓고 있다 보니 재정이 경제 활성화의 짐을 대신 떠안았다. 지난 수년간 정부가 작성한 예산안에 ‘경제 활력’ ‘민생 안정’ ‘일자리 창출’이라는 부제가 항상 붙어 다닌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재정정책은 통화정책에 비해 경기 대응력이 떨어지는 데다가 민간투자를 저해하는 부작용마저 있기 때문에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를 적극 활용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라고 하기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기는 부진한 채 정부 빚만 늘어났다.

한은이 경기 활성화에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 근본 원인은 통화정책의 목표에 있다. 한은은 물가안정을 통화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하도록 법률에 규정되어 있으며, 이를 위해 물가안정목표제라는 운영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한은은 물가만 안정시키면 되지 법적 근거도 없는 경제 활성화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사실 한은은 사전에 정해 놓은 물가안정목표를 달성하면 그것으로 책임을 다하는 셈이다. 경기가 나쁘다고 해서 통화정책을 주도적으로 시행하기에는 법적 근거가 약하고 정부와의 갈등도 피하기 어렵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한은이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 통화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며 이에 걸맞은 운영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물가안정목표제는 1970년대에 도입한 통화량 목표제가 물가안정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외환위기 때 채택된 것이다. 그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통화당국은 통화량, 금리, 환율, 자산가격 등 정보 변수에 기초하여 인플레이션을 예측하고, 예측치가 사전에 정해 놓은 목표치에 도달하도록 기준금리를 조정하면 된다. 이런 특성 때문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물가안정목표제는 물가안정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점차 효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물가안정목표제는 높은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는 데는 유용하지만, 낮은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이 전개되는 상황에서는 유효성이 크게 저하되기 때문이다. 2008년 경제위기 때 경험했듯이, 경제위기에는 인플레이션율이 목표 상한선을 넘더라도 기준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는 만큼 물가안정목표제의 유용성에 더욱 의문이 간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 경제에도 저물가 추세가 자리 잡았다. 지금은 한은이 물가안정보다는 금융안정을 위해 민간에 풀린 돈을 신속하게 회수할 수 있어야 하며, 자본시장 개방과 금융의 상호연계성 강화로 인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금융위기에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통화정책의 목표 변경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최근 하버드대의 라인하트와 로고프 교수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발표한 ‘연방준비은행의 목표 변경’이라는 글에서 지난 100년간 연준의 목표는 금융안정(1913∼1939년)에서 재정자금의 조달(1939∼1979년)을 거쳐 물가안정(1979∼2007년)으로 세 번 바뀌었으며 이제 네 번째 목표를 모색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1950년대에는 전비(戰費) 등 막대한 재정지출을 지원하기 위한 재정자금의 조달, 60년대와 70년대에는 성장통화의 공급, 80년대 이후 2011년까지는 물가안정으로 통화정책의 실질적인 목표가 변화해 왔다. 2012년 이후부터는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은 물론이거니와 경제 활성화를 포함하는 새로운 목표 설정이 요청되고 있다. 지금처럼 한은이 경제 활성화를 재정의 영역으로 떠넘긴 채 손을 놓고 있다면 한은의 궁극적 목표인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성취하기란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

※ 필자는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KDI 겸임연구위원이며 국회예산정책처 등의 자문위원으로 있다.

오피니언팀 report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