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충순(1945∼ )
가로등이 하얀 밤
가로등 밑에 얼굴을 쥐고 있는 사내가있다
담배는 꺼진 채 손에 들려 있다
그 손에 선인장이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잠잠해진 그는 눈을 아래로 깔고 있다
모든 걸 잃진 않았다고
얼굴을 쥔 손바닥을 가만히 떼어주고싶다
사회파 다큐 사진 한 컷 같은 1연이다. 그 사내는 어쩌면 술에 취해 있을지도 모른다. 저런 모습으로 누구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았으련만, 무릎을 꺾고 주저앉아 담배 한 대를 빼들 수밖에 없었나 보다. 담배에 불은 붙였을까, 하얀 조명을 받고 있는 무대 같은 가로등 밑에서 사내는 얼굴을 감싸 쥔다. 멀리 가까이 도시의 하얀 소음이 끊이지 않고 밀려왔다 밀려가고. 사막에 홀로 떨어진 듯 외로운 사내의 손에 들린 담배 한 개비, ‘그 손에 선인장이 자라고 있는 것 같다’.
모르는 이의 불행한 모습을 돌발적으로 마주치면 심란해하며 얼른 지나쳐버리기 쉽다. 마음이 각박해서도 그렇고, 그 불행을 감당할 힘이 없어서도 그렇다. 그런데 화자는 ‘모든 걸 잃진 않았다고/얼굴을 쥔 손바닥을 가만히 떼어주고’ 싶단다. 거친 삶이 겨운 듯 길바닥에서 얼굴을 감싸 쥐고 있는 사내를 지켜보는 화자의 같이 울고 싶은 마음이 꾸밈없이 전해진다. 삶의 혼곤한 바닥에 대한 공감에서 우러나는 연민의 정이다.
위 연배 시인의 새로운 시세계에 삼가 고개가 숙여지고, 분발 의욕이 솟구친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