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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1929년 서울의 겨울, 너도나도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입력 | 2014-03-22 03:00:00

◇경성모던타임스/박윤석 지음/428쪽·1만8000원/문학동네




이 책은 1920년대 서울에 사는 가상의 신문사 기자 ‘한림’의 눈에 비친 식민지 조선과 그 속에서 살았던 인간 군상의 모습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독자의 아바타인 한림은 직업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식민지 서울에서 만나고 듣는 수많은 인물과 사연을 지금 독자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인 양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책은 1929년 세밑 풍경을 다룬 1부(1∼6장)와 3·1운동 발생 1년을 막 지난 시점인 1920년 4월 서울이 배경인 2부(7∼13장)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 한림은 서울 거리의 산책자다. 종로와 청계천, 다동과 명동 일대를 걸어 신문사로 돌아오는 짧은 여정 사이사이에 한림은 당시의 서울 풍경을 세밀화처럼 재현한다. 서울에 불어 닥친 커피 열풍과 영화와 라디오 보급처럼 당대의 신문물과 최첨단 유행을 경험하는 것은 기본. 영화 ‘아리랑’의 감독 나운규가 원래 조선키네마(시네마)에 악역 배우로 채용됐다거나, ‘상록수’의 작가 심훈이 실은 영화 ‘먼동이 틀 때’의 감독이었다는 사실 같은 소소한 뒷얘기를 듣는 재미가 크다.

책은 항일 운동 역사도 비중 있게 조명한다. 을사늑약 체결 당시 대한제국의 대신으로 이에 반대했던 한규설을 인터뷰한 한림 덕분에 독자들은 조약 체결 전후의 긴박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서울역에서 조선 총독 사이토를 향해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의 의거 상황을 묘사한 대목에선 마치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는 듯한 생생함이 느껴진다.

영친왕 이은의 약혼녀였지만 일제가 영친왕을 이방자 여사와 강제 결혼시키면서 버림받고 중국으로 떠난 민영돈의 딸 이야기는 비극적 우리 역사의 축소판이다. ‘매국노’ 이완용이 3·1운동 직전 민족 대표 손병희에게 3·1운동 참여를 제안받았으며 이를 거절하고도 차마 일제에 밀고하지 않았다는 일화도 흥미롭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저자는 당시 신문과 잡지, 공문서와 지도, 일기와 회고록 같은 방대한 자료를 종합해 1920년대 서울의 풍경과 삶을 현실감 있게 재현했다. 딱딱하지 않아 쉽게 읽히면서도 현실감을 잃지 않았다는 게 대중역사서로서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