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영 경제부 차장
당시 공정위가 진입규제 철폐에 나선 건 규제개혁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각 부처가 별다른 이유 없이 새로운 기업의 설립을 허가해주지 않는 산업을 찾아내 이를 풀어주면 창업과 투자가 늘고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취지였다.
공정위는 2009년 4월 60개의 진입규제를 찾아내 초안을 만들었다. 국세청의 병마개 제조업체 지정권한을 폐지하고 등록제로 바꾸는 방안도 초안에 포함됐다. 하지만 이 방안은 그해 9월 대통령 주재회의에서 확정된 최종 리스트에서는 빠졌다. 국세청이 여러 업체가 병마개를 만들면 위·변조를 막기 어렵고 세금수입 관리가 안 된다며 강력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제조부터 판매, 재고까지 일일이 컴퓨터로 관리하는 요즘 주판과 장부를 쓰던 시절에 만든 규정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반박했지만 결국 국세청을 꺾지 못했다.
이렇게 국세청의 보호를 받는 병마개 회사들은 국세청 퇴직 관료들을 임원으로 채용한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국세청 퇴직 관료 6명이 삼화왕관의 부회장, 감사, 부사장 등 고위직으로 옮겨갔다. 세왕금속의 사장도 주로 국세청 출신이 맡아 왔다.
공정위의 진입규제에 반발한 정부기관은 국세청만이 아니었다. 여러 부처가 공정위가 선정한 과제들에 반대하는 바람에 60개 규제는 최종안에서 26개로 줄었다. 당시 이 정책 추진과정에 참여했던 한 공무원은 “정부 부처들의 저항이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고 토로했다.
규제는 공무원이 민간인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규제 때문에 이익을 보는 민간인들은 규제를 지키기 위해 공무원들에게 로비하고, 규제 때문에 손해를 보는 민간인들은 규제를 깨기 위해 로비한다.
공무원들이 기를 쓰고 규제를 지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질책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 배경에는 사적 이익을 지키려는 관료사회의 집요함이 도사리고 있다.
규제는 권력이다. 권력은 강한 중독성을 갖는다. 권력 맛을 보면 여간해선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TV 생중계와 같은 일회성 행사는 국민의 속을 후련하게 해줄지는 몰라도 규제개혁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민간인들이 규제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규제개혁을 공무원에게 맡겨서는 백전백패다.
신치영 경제부 차장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