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명문대학들 교육 목표는 다양성과 사회필요한 인재 배출 학업성적은 필수조건일 뿐 리더십-열정 가진 학생 선호 여전히 성적에 집착하는 한국… 창조적 인재 선발-육성 위해 대학들 더 치열한 고민해야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조카가 스탠퍼드대에 지원을 했는데 떨어졌다며 성적은 전부 A를 받았고 AP(Advanced Placement·고등학생이 대학 수준의 과목을 대학 입학 전에 학점으로 따서 이수하는 제도) 과목도 여럿 들었으며 SAT(Scholastic Aptitude Test·대학수능시험)는 만점을 받았으니 실망이 클 뿐 아니라 왜 불합격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나 역시 그 자세한 이유를 알 수는 없다. 스탠퍼드대는 입학사무처가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총장도 입학사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 다만 그 학생은 아마도 스탠퍼드대가 원하는 학생이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미국에는 3000여 개 대학이 있는데 학교의 크기나 미션(학교가 추구하는 목표) 등에 있어서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입학사정 기준도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대체로 좋은 대학일수록 미국 사회가 필요로 하고 더 나아가 글로벌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삼고 학생을 선발한다. 이때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이 학업 성적 이외에 ‘리더십’과 ‘커미트먼트(commitment)’이다.
리더십을 정의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지만 리더란 본인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과 희생 봉사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 클럽이든 사회봉사 단체든 본인의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커뮤니티에 대한 사랑과 봉사 책임의식을 갖는 것이 바로 리더십의 출발점이다. 그러므로 해당 학생이 리더로서의 잠재적 능력이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커미트먼트’는 한국어로는 ‘약속, 헌신, 전념’으로 번역되는데 뭔가 정확한 어감이 들지는 않는다. 커미트먼트는 정말 본인이 하고 싶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고 열정을 바치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공부든 운동이든 음악이든 봉사활동이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는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한국 학생들은 소위 ‘스펙(specification의 속어)’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쓰고 노력한다. 많은 스펙을 쌓다 보면 겉으로는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과연 어느 하나라도 진지한 열정을 갖고 임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말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열정을 갖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미국 대학에서는 화려한 스펙을 가진 학생보다는 어떠한 일에 오랫동안 열정을 갖고 전념한 학생에게 더 많은 점수를 준다.
대학은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고 또 공부만 잘하는 학생들을 모아둘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책임 있는 구성원을 육성하는 곳이며 다양한 배경과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야 서로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구글이나 야후 등 실리콘밸리 첨단 산업의 창시자들이 스탠퍼드대에 다니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창업을 한 것은 이런 입학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도 21세기형 인재를 어떻게 선발하고 육성할 것인지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성적순에 의한 단선적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해서는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맞는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배출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추구하는 창조경제를 이루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글로벌 인재를 육성할 수 있는 환경과 교육이 절실하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