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통장 거액 인출 체포되자… 정체 숨기고 허름한 집 안내
사실은 대형사무실서 10억 챙겨
17일 0시경 서울 은평구 구산동의 한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 털모자를 눌러쓴 조모 씨(38)가 다가섰다. 그가 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5만 원짜리 지폐가 ATM 위에 수북이 쌓여갔다. 700만 원, 800만 원…. 야심한 시간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뽑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한 시민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다.
조사해보니 조 씨가 돈을 뽑던 계좌는 ‘대포’였고 돈의 출처도 대지 못했다. 경찰은 일단 조 씨를 보이스피싱 사기단 일당으로 의심하고 체포했다.
경찰은 다른 일당까지 검거하기 위해 조 씨에게 집으로 가자고 했다. 조 씨는 응암동의 한 월세방으로 안내했는데 먹다 만 컵라면과 유통기한 지난 음료수 병만 뒹굴 뿐 사람 사는 흔적이 없었다. 수상히 여긴 경찰은 조 씨 휴대전화 발신 위치를 토대로 실제 거주지로 추정되는 갈현동의 한 빌라에 쳐들어갔다. 놀랍게도 그곳엔 인터넷 방송용 서버 16대와 PC 19대가 가득 들어찬 65m² 크기의 사무실이 있었다. 조 씨는 보이스피싱 사기단이 아니라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를 열고 고객을 늘리기 위해 생중계 인터넷 방송국까지 운영하던 업주였던 것. 응암동 방은 그가 예전에 살던 곳이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