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스테이크
CJ푸드빌 제공
“음, 난 웰던(well done).”
나도 모르게 “정말?”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도대체 무슨 문제냐는 해맑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웨이터는 ‘웰던’ 소리에 움찔했다. 주방에서도 셰프가 인상을 찌푸리며 ‘거, 아는 사람들끼리 왜 이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루에 몇 장의 스테이크 주문이 들어오는지 일일이 셀 수도 없다. 치익, 치익. 고기도 익고 내 손가락도 익는다. 그래도 주문은 계속 들어온다. 헤드 셰프가 주문서를 읽는다.
“안심 미디엄 레어(medium rare) 둘, 미디엄(medium), 등심 미디엄, 미디엄 웰(medium well), 티본 미디엄.”
고기를 그릴에 올려놓자마자 또 다른 주문이 들어온다.
“등심 미디엄 웰, 안심 미디엄, 웰던, 티본 웰던.”
“안심 웰던에 얼마나 걸리지?” “3분입니다!”
헤드 셰프가 못 들은 것처럼 다시 물었다.
“얼마?” “1분입니다!” “좋아!”
어떻게든 1분 안에 내야 했다. 안 그러면 오늘 밤은 헤드 셰프의 다채로운 영어 욕 강의를 듣게 될 터. 고기를 눌러봤다. 아직 물컹거렸다. 미디엄 웰. 애기 볼처럼 말랑말랑하면 레어, 발뒤꿈치처럼 단단하면 웰던이다. 미디엄, 미디엄 레어는 그 사이 어디쯤이다.
웰던으로 굽지 않더라도 고기가 안 좋으면 맛있는 스테이크는 불가능하다. 셰프 할아버지가 와도 안 된다. 마블링도 중요하지만 깊은 맛은 숙성에서 나온다. 어린 소의 고기는 연할지 몰라도 나이든 소의 고기를 숙성시켰을 때 나오는 감칠맛은 없다. 그래서 늙은 젖소 고기를 쓰는 레스토랑도 있다. 젖소는 우유가 목적이라 나이든 소가 많은데, 이 소에서 얻은 고기를 냉장고에 넣고 한 달에서 6개월까지 숙성을 시킨다.
좋은 고기가 있으면 잘 굽기만 하면 된다. 어려울 것은 없다. 센 불에 15분 정도 달군 뜨거운 팬에 소금 간을 한 고기를 올려놓는다. 그때 소나기 내리듯 ‘쏴아악’ 하는 소리가 살벌하게 나야 한다. 이렇게 고기를 지지면 단백질의 아미노산이 고온과 반응해 우리가 좋아하는 풍미를 만들고 색깔은 노릇하게 변한다. 수육과 불판에 구운 삼겹살의 맛 차이가 여기서 나온다. 색깔이 곧 맛이다. 고기 겉면을 구워 육즙을 가둔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물론 이런 말을 그녀에게 하지는 않았다. 스테이크보다 뭐가 중요한지는 아는 나이였으니까. 단지 ‘으응’ 하고 석연찮게 대답했을 뿐이다. 스테이크를 굽던 셰프는 아마 ‘동업자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개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여자 말을 들을 때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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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현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