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과장 자살기도 파문] 권 과장은 누구 1996년 ‘깐수’ 수사로 보국훈장… 2009년부터 3년간 中서 활동
국가정보원 권모 과장(대공수사국 전 파트장·4급)은 오랜 시간 중국에서 블랙과 화이트 요원으로 일하며 ‘국정원 창설 이래 최고의 정보관’ 중에 한명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 과장이 수사 정보나 북한 첩보를 보내오는 날이면 국정원 본부가 모두 궁금해했다고 한다. 권 과장도 자긍심이 강했다. 그는 21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선양(瀋陽) 거점장’ ‘북한을 들여다보는 망루’라고 표현했다.
2011년 ‘왕재산 사건’은 권 과장이 없었으면 기소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당시 화이트 요원으로서 주베이징 총영사관 영사로 파견됐던 권 과장은 블랙 요원 역할까지 수행했다. 그는 지하당 왕재산 총책 김모 씨와 연락책 이모 씨가 베이징(北京)에서 북한 대남공작부서인 225국 공작조와 접선하는 장면을 모두 채증했다. 왕재산이 225국과 접촉하고 지시를 받은 혐의를 입증할 핵심 증거였다. 이 과정에서 중국 공안당국과 북한으로부터 신변의 위협도 받았다고 한다.
권 과장은 채증 사진이 증거로 채택되도록 영사 신분으론 처음으로 법정에서 진술하기도 했다. 왕재산 사건 변호를 맡았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사진이 조작됐고 위법하게 수집됐다”고 주장하자 “신분이 노출되더라도 간첩을 잡는 일인데 직접 증언하겠다”며 나섰다.
권 과장은 2006년 일심회 사건, 1996년 무함마드 깐수(한국명 정수일) 사건 담당 수사관이기도 했다. 특히 그는 아랍어과 교수로 신분을 세탁한 간첩이었던 ‘깐수 사건’으로 그해 보국훈장을 받았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목숨은 건졌지만… 호흡, 기계에 의존▼
국가정보원 권모 과장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여전히 의식이 없다. 차량 문을 걸어 잠그고 번개탄을 피워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인한 부정맥으로 뇌와 폐 등 신체 장기 다수가 손상된 상태다. 권 과장의 위와 장에서는 스트레스로 인한 궤양성 출혈이 발견됐다. 그만큼 검찰 수사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권 과장은 22일 오후 1시 25분경 경기 하남시 하남대로 한 중학교 앞 빌딩 입구에 세워진 은색 싼타페 차량 안에서 발견됐다. 이 빌딩 3층 영어학원에서 일하는 외국인 강사 A 씨가 처음 발견했고 함께 강사로 일하는 한국인 아내가 하남소방서에 신고했다. 현장에 출동한 119구조대는 차량 문이 잠겨 있어 뒷유리창을 깨고 권 과장을 꺼냈다. 차량 조수석 밑에선 번개탄 1개가 담겨 있는 은색 냄비가 발견됐고 운전석 옆에는 담뱃갑이 놓여 있었다. 소방 관계자는 “발견 당시 심정지 상태로 의식이 없고 사망 직전에 보이는 ‘임종 호흡(심정지 호흡)’ 증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동아일보의 단독보도로 권 과장의 자살 기도 사실이 알려진 24일 오전부터 아산병원 응급중환자실 앞에는 취재진 수십 명이 몰려들었다. 권 과장 가족은 오전 10시 응급중환자실을 찾아 의식이 없는 권 과장을 본 뒤 오후 8시에도 병원에 와 30여 분 동안 면회한 뒤 택시를 타고 돌아갔다. 권 과장 주치의인 유승목 응급의학과 교수는 오후 6시 응급중환자실 앞에서 브리핑을 갖고 “이송 당시 심장 상태가 매우 안 좋았고, 의식불명이 지속되고 있다”며 “환자 스스로 충분한 호흡을 할 수 없어 기계에 의존한 호흡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동주 djc@donga.com·임현석·박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