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장마와 싸우며 2조원 공사 한창… 설계-시공-관리 ‘디벨로퍼’ 도약 발판
필리핀 바탄 주 리마이 지역에 있는 정유플랜트 공사현장에서 대림산업 직원들이 공사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대림산업 본사 직원 150여 명이 파견된 이 공사는 현지 근로자 1만6800여 명이 매일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대림산업 제공
대림산업이 진행하고 있는 ‘페트론 리파이너리(석유 정제공장) 마스터플랜 2단계’(RMP2) 공사현장의 수은주가 30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고재호 대림산업 부장은 “필리핀은 3월부터 여름이 시작되기 때문에 한낮 기온은 35도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나마 우기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려 공사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운 게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현재 공정 92%인 이 현장에서 직원들은 막바지 작업을 마무리하느라 분주하다. 현장 책임자인 유재호 상무는 “한국에서 파견된 직원들은 시키지 않아도 오전 6시쯤 출근해 오후 11시까지 현장을 지키고 있다”며 “6월 중순으로 예정된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해 전 직원이 애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낡은 정유시설 대신 현대식 설비를 신설·증설하는 이 공사는 공사비만 20억 달러(약 2조1532억 원)에 달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에 앞서 진행한 기본설계 등 선행작업은 일부 해외 선진업체들만 수행했던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대림산업은 2011년 11월 필리핀 최대 정유회사인 페트론으로부터 이 계약을 따냈다. 부지 면적 37만여 m²에 달하는 대형 공사를 28개월 내에 마무리하기로 하면서 365일 ‘풀가동’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어려운 도전에 나선 셈이다.
대림산업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글로벌 디벨로퍼’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디벨로퍼는 건설만 아니라 프로젝트 발굴, 사업 지분투자와 시설 운영관리까지 맡는 종합 건설사업자를 의미한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동남아시아에서 한국 업체가 수주한 프로젝트 가운데 금액기준으로 가장 규모가 큰 데다 고부가가치 선진사업 영역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필리핀의 공사 환경은 난도가 대단히 높은 편이다. 대림산업 관계자들은 한국과는 전혀 다른 기후와 싸움을 벌이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지난해 7∼9월 필리핀에는 한국 1년 평균 강수량의 4배에 육박하는 4300mm의 비가 집중적으로 내렸다. 발주처도 예상하지 못하는 날씨 변수가 자주 발생하다 보니 공사일정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매일 1만6800여 명에 달하는 근로자가 투입되다 보니 이들을 관리하는 것도 난제다. 필리핀 현지 근로자들은 한국인과 달리 여유롭게 일하는 편이라 이들을 독려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해외 건설현장에서 20여 년간 근무했던 유 상무는 “인화(人和)는 대림의 핵심 가치이기도 한 만큼, 팀워크를 살리기 위해 현지 직원들의 이름을 외우고 e메일을 통해서도 수시로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림산업은 해외진출 지역과 공사내용을 다변화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특히 해외시장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짜기 위해 새로운 거점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처음 진출한 오만이 대표적인 나라. 11월 수주한 오만의 ‘소하르 정유공장’ 증설공사는 수주금액이 1조1100억 원에 달한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지난해 일궈낸 해외매출 약 6조 원 가운데 44.4%는 새로 진출한 시장이나 10여 년 만에 재진출한 국가에서 나왔다”고 자랑했다. 가스·오일플랜트 분야로 한정됐던 공사분야도 발전소와 특수교량 등 발전플랜트 및 토목, 건축 분야로 확대됐다.
석유화학 및 에너지 발전사업을 미래 핵심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려는 전략에 맞춰 관련 사업 확장에도 힘을 쏟고 있다. 13년 만에 재진출한 말레이시아에서 지난해 8월 수주한 ‘패스트트랙 프로젝트3A 석탄화력발전소 공사’가 핵심 동력사업 중 하나다. 이철균 대림산업 사장은 “차별화된 설계안을 제시해 발주처로부터 초기투자 및 유지보수 측면에서 최적의 설계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며 “창의적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해 ‘건설 한류’를 일으키는 데 대림산업이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