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코리아 프로젝트 2년차/준비해야 하나 된다] [탈북자에서 한국인으로]<3>신영무역 대표 신경순씨
국내 대표적인 약단밤 생산업체로 성장한 신영무역 신경순 대표(왼쪽)가 부산 연제구 공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2008년 2차 탈북해 한국에 온 신 대표는 “통일이 되면 북한 사람들에게 ‘북한에서 못했던 것 한국에서 다 하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부산=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내가 조국을 배반한 게 아니라 조국이 우리를 못 지켜줘서 살 길 찾아 떠난 것 아니었나. 그렇게 심하게 대하진 않겠지.’
신의주에 도착하는 순간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하는 후회가 머리를 쳤다.
“북한이라는 나라 자체가 저질스럽고 포악한 곳이었어요. 북한엔 자유가 없고, 중국에선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신분 보장이 안 됐죠. 갈 곳은 한국뿐이라고 결심했습니다.”
○ “당찬 경순 씨라면 할 수 있어요”
2008년 1월 두만강을 다시 건넜고 같은 해 4월 한국에 도착했다. 고향 함북 청진의 바다가 그리워 부산에 정착했다. 중국의 약밤과 옥수수 등 농산물을 수입하는 무역회사의 중국어 통역으로 취업했다. 중국 생활 때 자기만의 사전을 만들고 학생들이 버린 책으로 열심히 중국어를 공부한 게 큰 자산이었다. 월급은 100만 원이었지만 거주지보호기간(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 퇴소 이후 정부 지원금을 받는 기간) 5년 동안 차곡차곡 모은 지원금까지 합쳐 1억 원을 모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취직 1년 만인 2009년 여름 회사는 부도 직전이었다. 일자리 찾아 서울로 갔다가 허탕 치고 내려오던 기차 안에서 신 씨는 인생을 바꿀 결심을 했다.
부산에 돌아온 신 씨는 자신이 회사를 인수하면 어떨지 한 직원에게 물었다. 그 당돌한 질문에 그 직원은 “당찬 경순 씨라면 잘할 것 같아요”라며 힘을 줬다.
“사람들이 이렇게 날 믿어주는데 내가 나를 못 믿을 이유가 없다는 자신감이 솟았어요.”
취업장려금과 저축해놓은 돈을 합쳤고, 부산 소상공인지원센터를 찾아 1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같은 해 8월 신 씨의 직함은 신영무역 대표로 바뀌었다.
약단밤 수입을 위해 허베이 성 업체들과 접촉하면서 중국생활 시절 신 대표를 좋게 봤던 관계자들과 다시 인연이 닿았다. 신 대표는 그해 가을 국내 업체 중 가장 먼저 햇밤을 들여왔다. 국내 약밤 시장에 난리가 났다. “약밤은 햇밤 전쟁이에요. 거래처들이 경쟁 수입업체들에 ‘신영은 햇밤인데 너희는 왜 묵은 밤이냐’고 한 거죠. 그 업체들까지 저희 약밤을 사가면서 동이 났습니다.”
신 대표가 히트를 치자 경쟁업체들의 견제가 심해졌다. “시장을 호락호락하게 내게 넘겨주겠어요? 호호호. ‘북한에서 온 여자 주제에 무슨 사업이냐’며 사무실로 와 행패를 부리기도 했죠.”
신 대표는 물러서기보다 새로운 개척을 준비했다. 그때까지 경쟁업체는 모두 오프라인 판로만 있었다. ‘차별화된 브랜드를 만들어 인터넷으로 팔아보면 어떨까.’
2011년 여름 신 대표는 ‘키즈약밤’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인터넷판매 준비에 돌입했다. “마침 소셜커머스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다시 대박이 터졌어요.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는 말이 실감났죠.”
남북하나재단(이사장 정옥임)에 따르면 신영무역은 2011년 국내 약단밤 판매량 1위이다. 2012년 한 언론사의 중소기업 브랜드 대상을 받았고, 매출은 10억 원이 넘었다.
늘 순탄했던 건 아니다. 2012년 세법(稅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 세무 추징금을 내야 했다. “누굴 속인 적 없고 노력해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탈북자라서 차별받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죠. 하지만 2012년 조세심판 청구로 추징금의 3분의 2를 감면받았어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법은 탈북자에게도 공평하다는 걸….”
○ “당당하게 살 것 아니면 왜 목숨 걸고 탈북하나”
신 대표는 “탈북자들은 한국에서 자유와 합법적 신분을 보장받았습니다. 무한대의 기회가 열린 거죠. 한국 정부로부터 그 기회의 공을 받은 겁니다. 그 공을 어디로 던질지 자유 의지에 따른 선택 기회 역시 원래 한국인이든 탈북자든 똑같아요.”
그래서 그는 북한에서 온 사람임을 숨기지 않았다. “당당하게 북한에서 왔다고 밝히고 그래서 한국말을 잘 못 알아들을 수도 있다고 솔직하게 밝히면 편해지고 마음을 터놓게 되더라고요. 북한에서 온 게 죄가 아니잖아요. 탈북자도 한국인입니다.”
“통일이 되면요?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한국에서 떳떳하고 당당하게 열심히 살았더니 부자가 되더라. 나는 북한에서 못한 것 한국에서 다 하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게 통일을 준비하는 탈북자들의 역할이겠죠. 그렇게 살지 않으려면 목숨 걸고 한국엔 온 게 무의미하지 않겠어요?”
부산=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