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기호 소설가
전화를 할까,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편지를 쓴다. 너도 이미 눈치 채고 있겠지만… 그래 진만아, 우리 친구들 모두 지금 네 전화를 피하고 있는 게 맞아. 네 문자가 오면 확인도 안 하고 지워버리기 일쑤고, 심지어는 수신 거부 해놓은 친구도 몇 명 있다고 하더라. 너는 좀 아프겠지만 그게 사실이야. 난 지금 사실만 얘기하려고 해.
진만아.
모두 너의 선택에 의아해하고 있을 때, 성진이가 그러더라. 걔가 왜 이번에 입주한 아파트 동대표가 됐잖아. 그때부터 바람이 좀 들어갔나 봐. 그제야 우리도 좀 이해되는 게 있더라. 왜 그때 네가 입주한 아파트 문제 때문에 지방신문에서도 대서특필하고, 꽤 시끄러웠잖아. 국도 변에 지어 놓고 약속한 방음벽도 세워주지 않는다고, 길 건너편 시멘트 공장에서 날아온 분진 때문에 집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아파트 입주민들이 시청에 몰려가 데모도 하고 그랬잖아. 아마 그 문제 때문인 거 같아. 아파트 사람들이 걔 등을 떠민 것도 있고. 성진이가 그렇게 말하자, 우리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지. 충분히 네 출마 이유가 납득이 된 거였어.
진만아.
그때 우리 친구들 모두 네 선거를 열심히 도왔던 거 기억나지? 선거 자금은 못 도와줘도 성심성의껏 몸으로 때웠잖아. 주말이면 너와 함께 명함도 돌리고, 네 등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박진만! 박진만!’ 구호도 외치고(그때 내가 네 선거 캐치프레이즈 쓴 것도 잊지 않았지? ‘관흥동의 숯불이 되겠습니다!’ 이거 내가 정해준 거잖아), 심지어 성진이는 돼지 인형 탈 쓰고 하루 종일 육교 위에 서 있기도 했잖아.
진만아.
백만아. 아니, 진만아.
우리 친구들 모두 선거 이후, 네가 얼마나 힘든 시절을 보냈는지 잘 알고 있어. 아파트도 팔고 다시 세입자 신세가 된 것도, 숯불돼지갈비집도 정리하고 작은 통닭집으로 업종 전환한 것도, 다 선거 때 쓴 비용 때문이었겠지. 그러면 진만아…. 이제 정신 차리고 장사에 매진해야지, 또 선거라니 이게 무슨…. 이번엔 출마하는 명분도 없잖니?
성진이는 그러더라. 네가 이번엔 조류독감 때문에 출마하려는 거 같다고…. 그게 사실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지만, 아니, 진만아. 그런다고 죽은 닭들의 영혼이 위로되겠니? 우리 동네엔 양계장 하는 집도 없잖니? 닭들은 투표권도 없잖니?
진만아.
하지만, 그래도 친구야.
나는 이번에 네가 출마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란단다. 내 말 서운해하지 말고, 꼭 새겨들었으면 해. 우리가 통닭집 자주 갈게. 선거 끝나면 맥주나 한잔하자.
이기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