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돌려주세요] 정부 구체기준 마련 과로입증 쉬워져… 60시간 못미쳐도 야근 횟수 등 반영
과로로 사망하거나 병에 걸리면 근로복지공단 심사를 통해 산업재해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과거에는 과로와 질병의 연관성을 입증하기가 까다로워 심사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정부가 지난해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한 뒤부터 입증이 다소 쉬워졌다는 평가다.
지난해 7월 1일부터 개정 시행된 고용노동부의 관련 고시(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에는 ‘질병이 발병하기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 또는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업무와 질병의 관련성이 강하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또 업무시간이 주당 평균 60시간을 초과하지 않더라도 야간 근무 시간과 횟수, 업무시간 증가 여부 등도 업무상 질병 인정 심사 때 적극 반영하도록 했다.
과로 때문에 업무상 질병에 걸리거나 사망했을 경우 근로복지공단에 신청을 하고, 업무상 질병 판정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하면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심사에서 기각되면 재심사를 거치거나 법원에 소송을 내서 승소하면 보상을 받게 된다.
최근 법원 판례 역시 과로와 업무상 질병과의 관련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고법은 지방국세청에서 일하다 우울증에 걸려 자살한 김모 씨 유족들이 보상을 거부한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과로로 걸린 우울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김 씨에 대한 ‘심리적 부검’을 진행하기도 했다. 심리적 부검이란 자살자의 행적과, 글, 동료 등에 대한 인터뷰 등을 통해 자살 동기를 규명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고시 기준을 충족했다고 하더라도 근로자의 의지와 질병의 인지 여부 등 개별 상황에 따라 보상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20일 서울중앙지법은 간암으로 사망한 방송사 PD 최모 씨의 부인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법원은 ”최 씨는 회사의 정기 건강검진을 통해 2006년부터 간 질환 증세를 알고 있었다”며 “정밀검사가 권고됐는데도 치료를 받지 않았고, 근로시간 단축 등의 요구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오래전부터 질병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치료를 받지 않고, 증세를 회사에 설명하는 등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취지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