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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으로 카톡으로 미친×… 24시간 욕이 따라다녀요 T.T”

입력 | 2014-03-28 03:00:00

[말이 세상을 바꿉니다]<3>키보드 위의 언어폭력
사이버 막말의 진화, 사이버 왕따




“존× 못생긴 ×. 널 낳은 니 에미가 불쌍.”

“인간쓰레기 ㅉㅉ 저런 건 폐기처분도 안 돼. 악 냄새나!!!”

지난해 7월 이모 양(16)이 페이스북에 자신을 찍어 올린 사진에 달린 76개 욕설 가운데 일부다. 하늘을 찍은 사진을 올리면 “왜? 자살하려고?”라는 댓글이 붙었고, 음식 사진을 올리면 “오크(괴물) 같은 게 밥은 목구멍으로 넘어가냐?”라는 욕설이 달렸다. 댓글을 올린 10여 명의 친구는 같은 학교 학생들. 이 양이 지난해 잠깐 만난 남학생이 이들 중 한 명이 좋아하는 선배였다.

이들은 학교에서는 물론이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거의 24시간 내내 이 양을 쫓아다녔다.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하루에 100개가 넘는 욕이 올라오는 날도 비일비재했다. 이 양은 “차라리 한 번 맞고 치우는 게 나을 것 같았다”며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애들로부터 쉬지 않고 욕을 들으니 너무 치욕적이어서 거의 매일 밤 울었다”고 했다. 이 양은 SNS 계정을 모두 닫았고 휴대전화 번호도 바꿨다.

○ 24시간 욕하는 사회

정보기술(IT) 기기가 발달하면서 언어폭력도 진화하고 있다. 학교 학원 직장 등 물리적 공간에 한정돼 벌어지던 언어폭력이 IT 기기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해 이뤄지게 된 것이다. 특히 IT 기기에 일찍 노출되지만 도덕률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청소년들은 사이버 언어폭력을 가벼운 장난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지난해 4∼6학년 초등학생과 중고교생 각각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균 30.3%의 학생이 사이버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500명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33.0%가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해 사이버폭력이 세대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이버폭력 피해를 당한 전체 학생 가운데 사이버 언어폭력(24.2%)을 당했다고 답한 이들이 가장 많았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신상정보 유출(18.4%)과 함께 사이버 언어폭력(18.0%)이 사이버폭력의 주된 내용이었다.

박모 군(13)은 “한 친구와 사이가 나빠지니까 7명의 친구가 어느 날부터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계속 욕을 하는 식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며 “SNS나 카카오톡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는 알람이 울리면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게 아니라 긴장부터 된다”고 말했다. 박 군의 스마트폰을 확인해보니 친구들이 박 군을 카카오톡 대화방에 초대한 뒤 올린 욕설은 400개나 됐다.

김봉섭 한국정보화진흥원 정보화역기능대응부장은 “놀이터나 동네 골목에 나가서 친구들과 놀 기회를 상실한 요즘 청소년들은 타인과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해소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며 “폭력이 난무하는 게임 등을 통해 사이버폭력에 익숙해진 청소년들은 죄의식 없이 사이버폭력을 행사하며 더 잔인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 사이버 언어폭력이 사이버 왕따로

피해자들은 “죽을 만큼 괴롭다”고 하지만 정작 가해자들은 많은 경우 스스로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거의 못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사이버폭력을 한 이유에 대해 묻자 초등학생의 45.7%가 ‘재미있어서(장난으로)’, 중학생의 68.2%와 고등학생의 64.1%는 ‘상대방에게 화가 나서(상대방이 싫어서)’라고 응답했다.

친구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수시로 욕설을 다는 차모 군(12)은 “숙제한 것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안 빌려줘 괘씸한 마음에 친구 SNS에 익명으로 욕을 몇 번 했다”며 “조사해 보면 남의 SNS에 욕을 한 적 없는 애가 없을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사이버 언어폭력은 많은 경우 ‘사이버 왕따’ 현상으로 이어진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횡행하던 따돌림 현상이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가면서 더욱 은밀하고 악질적으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사이버 왕따는 스마트폰이나 SNS에 대화방을 만들어놓고 당사자를 불러들여 집단욕설을 하거나 당사자만 배제한 채 욕을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카카오톡 등 스마트폰 대화방에 초대받으면 ‘승낙’ ‘거절’을 하는 절차가 없이 자동으로 방으로 들어가게 돼 무차별적인 욕설을 피할 방법이 없다. 또 당사자가 공개하지 않으면 외부로 드러나지도 않아 나중에 문제가 커졌을 때는 이미 상황을 수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이버 왕따를 당한 학생들은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경기 광주시에서 사이버 왕따를 당하던 한 고교생은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퇴했다. 이 학교 교사 양모 씨(33·여)는 “따돌림 현상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 사태를 미리 파악하지 못했다”며 “나중에 알게 됐을 때는 문제가 너무 커져버린 후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이버 왕따가 물리적 폭력보다 더 폭력적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봉석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도 숨을 곳이 없이 사이버 왕따가 이뤄지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까지 겪다가 극단적 선택을 할 수도 있다”며 “스마트폰을 본 뒤 우울한 말을 하는 경우 주의해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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