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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최영해]작가 복거일의 암 치료 거부

입력 | 2014-03-28 03:00:00


“남은 날이 얼마나 될진 모르지만, 글 쓰는 데 쓸란다. 한번 입원하면, 다시 책을 쓰기는 어려울 거다. 암 치료 받기 시작한 작가들 결국 소설다운 소설 못 쓰고서….” “그래도 아빠, 일단 살아야 하잖아? 그럼 우린 어떡해. 아빠가 치료도 안 받고 그냥….” 소설가 복거일이 최근 펴낸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문학동네)에 나오는 아빠와 딸의 슬픈 대화다.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현이립은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작가다. 픽션이 아니라 복거일 자신의 실제 얘기를 담은 자전적인 소설이다. 그는 2년 반 전 말기 간암 진단을 받고 병원 문을 나선 뒤 한 번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항암 치료를 받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그동안 계획만 해놓고 쓰지 못한 소설을 더 늦기 전에 집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2년 반을 버텼다. 신기할 정도로 잘 견뎌냈다.

▷복거일은 암 선고를 받은 이후 더 열심히 글을 썼다. 1991년 발간한 과학소설 ‘역사 속의 나그네’(전 3권)의 후속편 4∼6권을 지난해 봄에 탈고했다. 20여 년 전 속편을 쓰겠다던 약속을 병마와 싸우며 지켰다. 아울러 ‘한가로운 걱정들을∼’과 ‘내 몸 앞의 삶’ ‘신도 버린 이 땅에서’ 등 소설 3권을 더 썼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드니 평상시보다 더 강렬하게 살게 됐다고 작가는 말한다.

▷항암 치료는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피폐하게 만든다. 말기 간암 환자의 마지막 희망인 간 이식 수술을 받으려고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다가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있다. 복거일이 여느 사람들처럼 항암 치료에 집중했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본다. 예전에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집에서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연스레 임종을 맞았다. 의학 기술이 발달한 요즘은 환자들이 얼굴에 인공호흡기를 달고 팔에는 주삿바늘을 주렁주렁 꽂은 채 고통스럽게 마지막 숨을 거두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어느 쪽이 인간의 존엄성을 더 지키는 길인지 복거일의 선택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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