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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충동구매 조장” 80%… 부부싸움 단골 메뉴

입력 | 2014-03-29 03:00:00

홈쇼핑 ‘대박 신화’ 뒤의 그늘




전문가들은 TV홈쇼핑이 유통업에 가져온 가장 긍정적인 변화로 ‘시장 진입장벽의 철폐’를 꼽는다. 이전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브랜드 파워와 유통망을 갖춘 기업만이 시장에 들어올 수 있었다.

TV홈쇼핑이 등장하면서 상대적으로 브랜드 파워가 약한 중소기업이 참신한 아이디어와 제품만으로도 판매 채널을 가질 수 있게 됐다. NUC전자(유산균 발효기)와 한경희생활과학(스팀다리미)은 홈쇼핑에서의 인기를 통해 ‘대박’을 터뜨린 대표적인 중소기업이다. 탈북 유학생 출신인 전철우 씨는 자신의 이름을 붙인 갈비와 냉면으로 1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TV홈쇼핑의 풍요 뒤에는 어두운 그늘도 자리 잡고 있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은 TV홈쇼핑이 과소비를 조장한다는 점이다. 주부 안영희(가명) 씨는 요즘 남편과 ‘냉전’ 중이다. TV홈쇼핑 시청에 재미를 붙인 남편이 운동기구와 TV, 휴대전화 등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계속해서 사들이기 때문이다. 안 씨는 “1년도 안 돼 1000만 원 이상 쇼핑을 했다”며 “안 쓰는 물건이 방 하나를 거의 다 채울 정도”라고 말했다. 요즘은 쇼핑 중독 탓에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올 1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미디어시민모임 주최로 TV홈쇼핑 관련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언론학회 소속 전문가 패널 10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TV홈쇼핑 채널이 충동구매를 조장하는가’란 질문에 10명 중 8명이 그렇다(아주 동의 17%, 대체로 동의 63%)고 답했다. 충동구매를 조장하는 요인으로는 ‘상품 화면과 쇼핑호스트의 과장된 설득’(40%) ‘지상파 방송 사이에 TV홈쇼핑 채널을 배치했기 때문’(36%) 등이 꼽혔다. 홈쇼핑 채널의 배치 문제는 시청자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과 맞물려 논란이 되고 있다.

TV홈쇼핑 업체들의 ‘권력화’와 ‘갑을(甲乙) 논란’도 많이 거론된다.

중소 식품업체를 운영하는 이정훈(가명) 씨는 얼마 전 겪은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식은땀이 난다. 당시 그는 거래하던 TV홈쇼핑의 ‘갑(甲)질’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씨는 자신이 개발한 식품을 갖고 방송에 출연해 ‘억대 매출’을 올렸다. 자연스럽게 몇 번 더 방송을 했는데, 애매한 시간대에 잡힌 마지막 방송에서 매출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는 “다음 방송 일정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제작진의 말을 믿고 판매물량 생산에 들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제작진은 이리저리 피하며 전화도 받지 않았다. 이 씨는 준비한 제품을 모두 폐기처분해야 했고 회사는 휘청거렸다.

그는 가까스로 다른 홈쇼핑업체와 계약을 맺고 방송에 나가 물건을 팔았다. 결과가 좋았다. 그런데 전화도 받지 않던 이전 방송 제작진이 “잠깐 보자”며 연락을 해 왔다. 그들은 업체를 방문한 이 씨에게 “당신이 이럴 수가 있느냐”며 몰아붙였다. 이 씨는 작가들과 PD가 교대로 ‘배신의 이유’를 추궁하는 몇 시간 동안 회의실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는 “방송에 한 번이라도 나오고 싶어 하는 업체는 많고 방송시간은 한정돼 있어 홈쇼핑과 납품기업 사이에 갑을 관계가 형성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초에는 홈쇼핑업체의 임원급 간부가 상품을 공급할 수 있게 해주는 대가로 수십억 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 등)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판매전문가(쇼핑호스트) 출연료와 모델비, 세트제작비 등 방송제작 비용을 기본적으로 홈쇼핑업체가 부담하게 하는 내용의 표준거래계약서 개정안을 내놓았다. 바꾸어 말하면 그동안에는 상품 제조업체에 프로그램 제작비를 전가한 사례가 상당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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