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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戰 ‘한반도 훈련장’

입력 | 2014-03-30 20:40:00

미군, 한국과 연합훈련 통해 작전교리 업데이트
북한은 미사일 발사 등 매년 새로운 도발로 대응




3월 3일 미 해군 7함대 상륙지휘함인 블루 리지함(1만8000t급)이 한미연합훈련 키리졸브와 독수리연습에 참가하려고 부산 해군작전 사령부 기지에 입항했다. 뒤로 보이는 것은 미군 핵추진 잠수함 콜럼버스호(7000t급). 동아일보DB


“2~4월 이어지는 한미연합훈련 키리졸브와 독수리연습의 핵심은 전시증원이다. 주요 항구를 통해 미군 전력을 신속히 수용, 통합하는 과정을 맞춰보는 훈련이 키리졸브고, 이들을 지상을 통해 전선에 투입하는 과정이 독수리연습이다. 눈여겨볼 것은 전신인 팀스피리트나 RSOI(전시증원연습)가 한반도 상황에 특화됐던 것에 비해, 이들 훈련의 내용과 성격은 미군 병력이 투입되는 경우라면 전 세계 어디서나 적용할 수 있도록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미국으로서도 이 정도 규모의 병력전개와 상륙훈련을 실제로 돌려볼 수 있는 곳은 한국뿐이다.”

3월 초 한 전직 군 당국 관계자가 남긴 말이다. 미국의 군사전략 차원에서 한미연합훈련이 갖는 의미는 대북(對北) 억제 목적을 넘어선다는 것. 지구촌 어디에나 대규모 지상전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글로벌 군사대비태세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워싱턴의 진짜 속내라는 뜻이다. 예산 부족에 시달리는 미군에게 인건비를 제외한 훈련비 상당 부분을 한국 정부가 부담하는 키리졸브는 고맙기 짝이 없는 기회다. 남북관계 훈풍 같은 ‘작은 변화’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당연한 말이지만, 미국이 한반도에만 특화해 군사전략을 운용하는 것은 아니다. 유사시 한반도 전장에 적용될 미군 작전교리는 전체 미군 교리 변화에 따라 계속 업데이트된다. 거꾸로 보자면 북한으로서는 이러한 변화를 재빨리 간파해 대응하는 작전개념이나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작업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2014년 봄 진행되는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평양이 내놓은 ‘답안지’가 바로 2월 21일부터 3월 16일까지 다섯 차례 진행한 동해상 단거리 미사일 발사였다.

동해상 단거리 미사일 발사


북한 300mm 방사포의 원형으로 알려진 중국제 WS-1B 다연장 로켓포. 중국이 수출한 제품으로, 터키군 열병식에서 공개됐다. 사진│www.defencetalk.com

국방부 공식발표에 따르면 이들 미사일 발사는 사거리 55~500km에 고르게 나뉘어 진행됐다. 눈여겨볼 것은 두 번째와 세 번째 발사가 기존 스커드 미사일을, 다섯 번째 발사가 노후한 프로그 미사일을 쏜 것으로 추정되는 반면, 처음과 네 번째 발사에는 ‘KN-09’로 불려온 300mm 신형 방사포 시험이 포함됐다는 점. 2월 21일 100km를 날아갔던 이 방사포는 3월 4일에는 150km를 날아가 한미 양국의 정보분석관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휴전선부터 따지면 충남 천안을 가뿐히 넘어서는 거리다.

군과 정보당국이 북한의 신형 무기체계를 확인하는 작업은 크게 세 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북한군 부대 사이 교신이나 훈련 내용을 파악하는 감청과 신호정보 확인이 첫 번째다. 이를 통해 신형 무기체계 개발이 의심되면 군 당국은 이내 영상정보 수집을 요청한다. 한국군 자체 정찰수단은 물론 미국 측 군사정보위성이나 정찰기를 통해 해당 무기체계가 노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을 집중 촬영하는 작업이 반복된다. 이렇게 확인한 신형 무기체계는 식별부호를 발급한 뒤 한미연합군이 함께 작성하는 한반도정보평가(Peninsula Intelligence Estimate) 보고서 등에 공식 취합된다.

북측의 시험발사는 그간 한미 양국이 파악해둔 정보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먼저 중앙방공통제소(MCRC)와 이지스 구축함, 지난해 전방에 배치한 슈퍼그린파인 레이더를 풀가동해 날아가는 미사일이나 포탄의 사거리와 궤적을 추적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발사체와 통제소 사이 오가는 원격정보(telemetry)를 가로채 성능을 파악하는 신호정보 수집이다. 통제소에서 미사일에 보내는 궤도·추력 변경 명령이나 미사일에서 속도와 고도 등을 취합해 보내는 데이터 통신을 확인하는 일종의 감청작업. 레이더를 이용한 궤도 추적은 한국군 자산만으로도 상당 부분 가능하지만, 원격정보 감청은 미군 측에 대부분을 의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시험발사에서 300mm 방사포의 성능을 확인하는 작업 역시 마찬가지 수순으로 진행됐다. 북한의 방사포란 한국군의 다연장 로켓포(MLRS)와 유사한 개념으로, 신관 여러 개를 이동발사차량 한 대에 탑재한 무기체계다. 이름은 ‘포(artillery)’로 붙여졌지만, 사실상 포탄과 미사일 중간에 해당한다는 게 군사전문가들 설명이다. 포신 안에서 장약이 터지는 힘만으로 날아가는 포탄은 사거리에 한계가 있으므로 포탄 안에 추진제(propellant)를 넣어 일종의 로켓으로 만든 것이다. 기존 북한 방사포 가운데 최대 사거리를 자랑하던 240mm 방사포가 55km 내외를 날아가는 것에 비해 300mm는 150km 이상을 비행한다는 사실이 이번 시험발사를 통해 공식 확인됐다.

눈여겨볼 것은 이렇듯 추진제를 사용하는 방사포 로켓과 단거리 미사일을 레이더만으로 구분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 재래식 포탄과 미사일은 아예 날아가는 궤도가 다르지만, 추진제를 사용하는 로켓은 미사일과 거의 유사한 궤적을 그린다. 지난해 5월 북한이 발사한 100km 내외의 비행체가 단거리 미사일 KN-02인지 300mm 방사포 로켓인지를 두고 군 당국 내부에서 혼선이 빚어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번 시험발사에서 300mm 방사포 로켓이라고 특정할 수 있었던 것은 레이더 궤도추적에 더해 그간 한미 정보당국이 수집한 신호정보를 활용한 덕분이라는 뜻이다.

방사포 로켓은 단거리 미사일과 달리 한꺼번에 여러 발을 발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300mm 방사포의 경우 신관 4개를 차량 한 대에 탑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체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전에 발사 징후를 감지하기도 어렵다. 가장 큰 특징은 미사일에 비해 방사포 로켓이 수십 배 저렴하다는 사실. 단거리 미사일에 탄두 하나가 장착되는 데 비해, 방사포 로켓의 경우 대개 자탄 수백 개를 탑재해 타격 직전 목표물 주변에 흩뿌리는 방식을 택한다. 각각의 자탄이 쏟아져 축구장 크기만한 면적을 초토화하는 이른바 ‘철우(steel rain)’다.

동·서해 항공모함 투입 시나리오


300mm 방사포 발사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다수 언론은 평택·오산 주한미군 기지나 계룡대 지역까지 장사정포 사거리에 포함됐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러나 무기체계 전문가들의 우려는 각도가 다르다. 각 자탄이 수류탄 정도의 폭발력을 갖는 방사포 로켓은 벙커화된 군사시설에는 심각한 타격을 입히기 어렵기 때문. 기존 240mm 장사정포가 서울 민간지역을 주된 타깃으로 설정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300mm 방사포 역시 민간지역을 노려 공포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쓰일 공산이 커 보이는 이유다.

문제는 기존 장사정포가 군사분계선 근처에서 발사해야 서울을 사거리 안에 두는 데 비해, 300mm 방사포는 평양-원산선 이남 어디서든 서울을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광범위한 지역을 누비는 발사대 차량을 추격하는 일은 휴전선 인접지역만 감시하면 충분했던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지난한 작업이다. 더욱이 북한 장사정포를 파괴하는 한국군 주 전력 K-9 자주포(사거리 40km)로는 아예 근처에도 닿을 수 없다. 2020년까지 개발 예정인 차기 다연장 로켓(사거리 70~80km)도 미치지 못한다. 오로지 값비싼 공군 전력이나 미사일만이 이들 차량을 격파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층 적극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유사시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는 동해와 서해에 미군 항공모함 전단이 투입되는 경우다. 막강한 항공전력과 함대지 미사일로 무장한 항공모함이 평양을 향해 공습을 개시하는 일은 그야말로 한반도 전쟁의 최대 변곡점이다. 평양의 눈으로 볼 때 최대 난제는 그간 북한군에 이들 항공모함 전단을 공격할 수단이 전무했다는 사실. 오차가 최소 수백m에 이르는 탄도미사일은 수십 기를 쏟아 부어도 명중을 자신할 수 없고, 항공기는 강력한 함대공 요격 미사일망에 막혀 근처에 닿기도 전 피격당할 게 빤하다.

300mm 방사포는 이 ‘오래된 고민’에 그 나름의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고 일부 군사 전문가는 말한다. 점이 아닌 면을 타깃으로 하는 방사포 특성상 정밀성이 떨어져도 항공모함을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탄의 폭발력이 제한적이므로 함정을 관통해 격침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전투기 이착함이나 레이더 가동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2000만~3000만 원 상당의 방사포탄으로 척당 5조 원을 넘나드는 항공모함의 손발을 잠시나마 묶어둘 수 있다면 놀랍도록 경제적인 성과다.

A2AD(anti-access, area denial). 우리말로는 흔히 ‘반접근-지역거부’로 번역되는 이 용어는 21세기 중국 인민해방군의 군사전략 개념을 요약한 말이다. 적국 항공모함이 연안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고, 해안으로부터 일정 범위 이내에 진입하는 해상전력은 철저히 무력화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중국군이 2013년 10월 실전 배치한 것으로 알려진 ‘항공모함 킬러’ DF21-D 지대함 탄도미사일은 사거리가 3000km에 달해 이 전략을 구현하는 대표 무기체계로 손꼽힌다. 3000km 안으로는 항공모함을 투입할 생각조차 말라는 무언의 경고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미 국방부는 유사시 항공모함을 괌 바깥으로 빼내고 스텔스 전투기와 잠수함을 초기 전쟁 수행 핵심수단으로 삼는 공해전(Air-Sea Battle) 개념을 정립해 서태평양 전력 재배치를 서두르는 중이다.

동아일보DB


가상 공간에서 매년 전쟁


이에 비춰보면 300mm 방사포는 북한군이 작은 규모로나마 중국의 A2AD 개념을 ‘흉내 낼’ 수 있게 해준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워싱턴 정책결정자들이 북한 해안으로부터 최대 200km에 이르는 범위 안으로는 대형 함정 투입을 결심하기 어렵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서해에 미군 해군전력이 진입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동해 역시 상당한 거리만큼 떨어져 기동해야 하는 난점이 생긴다. 이러한 걸림돌은 전쟁 판도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해안 상륙작전을 감행하는 경우에도 똑같이 발생한다.

‘상대 전력이 피해갈 수 없도록 화력을 사거리별로 구성한 배치체계’를 흔히 화망(火網)이라 부른다. 2월 하순부터 진행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남한에 대한 공격 능력 과시 못지않게 유사시 전개해올 미군 측 해상전력을 향해 촘촘한 화망을 구축해놓았다는 경고사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근 해역에 들어오는 함정은 모두 무력화할 ‘지역거부’ 능력을 과시하려고 다양한 사거리와 종류의 무기체계를 대규모로 발사했다는 분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A2AD 전략으로 미군 항공모함을 먼바다까지 밀어내는 데 성공한 중국의 ‘개가’를 벤치마케팅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한 군 당국 고위관계자는 “한미연합훈련의 전력 이동 상황을 지켜보며 북한군도 그에 맞춰 대규모 병력 이동 훈련을 진행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한미 지상전력이 동부 축선에 집중되면 북한군 화력도 이 지역에 모이고, 남측 훈련이 상륙작전에 초점을 맞추면 북한군 역시 상륙 저지 연습에 돌입하는 식이라는 것. 1970년대 이래 한미연합군과 북한군은 매년 2~4월 연례훈련을 통해 이러한 장군과 멍군을 주고받았다. 양측 전력이 실제로 맞붙지 않을 뿐 가상 공간에서 서로 수를 겨루는 도상(圖上) 전쟁이 매년 봄 한반도를 무대로 벌어지는 셈이다. 한 전직 정보당국 핵심 관계자의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관계 훈풍과 미사일 연쇄발사가 연이어 진행된 것을 두고 정치적 의미를 따져 물었던 대다수 언론의 접근방식은 실제로 벌어진 일과는 거리가 멀다. 군사훈련 동향은 군사적 맥락으로 읽을 때 한층 쉽게 본뜻을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내년 이맘때면 한국과 미국은 다시 연합훈련을 진행할 테고, 북측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그에 대응하려 할 것이다. 한반도를 글로벌 전장의 일부로 인식하는 워싱턴과 변화하는 미국 측 군사전략을 따라잡으려 애쓰는 평양의 끝이 보이지 않는 술래잡기다.”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4년 3월 26일자 93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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