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안전점검 동행 취재
27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에 있는 순창원에서 김기주 한국기술교육대 건축공학부 교수(오른쪽에서 두 번째)를 비롯한 민관합동점검단이 석물들을 돌아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고양=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정말 근사하죠? 한데 할 일이 태산이에요. 얼른 서두릅시다.”
조동진의 ‘제비꽃’ 한 소절 떠올릴 틈도 없이, 조선왕릉관리소의 최길섭 수리복원팀장은 어깨를 툭 쳤다. 괜스레 무안해 둘러보니 잠시 넋 놓은 건 혼자뿐이었다. 점검반은 벌써 정자각(丁字閣)으로, 능 뒤편으로 흩어져 체크하기 바빴다.
추운 겨울이 지난 이맘때가 왕릉은 손이 많이 간다. 봉분은 얼음이 녹으며 구석구석 무너져 내렸다. 지붕 일부가 뭉개진 건조물도 눈에 띄었다. 먹을 게 없는 산짐승이 내려오는 것도 이 시기다. 실제로 최근 경기 여주시 세종의 영릉(英陵)과 효종의 영릉(寧陵)은 멧돼지와 두더지 출몰로 골머리를 앓았다.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온릉에 동작 감지 센서가 달린 폐쇄회로(CC)TV 카메라가 설치된 이유이기도 하다.
온릉을 거쳐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西五陵)과 서삼릉(西三陵)을 돈 이날 점검에선 다행히 산짐승 피해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산사태 발생 가능성도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방협회 경기지부의 김윤진 사무국장은 “왕릉이 대부분 산 구릉 ‘명당’에 위치해 큰 위험은 없지만, 배수로 시설에 대한 지속적 모니터링은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경기 양주시 장흥면에 있는 단경왕후의 온릉과 정자각. 아직은 누렇지만 우기엔 한 달에 몇 번씩 깎아줘야 할 정도로 잔디가 쑥쑥 자란다. 양주=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조선왕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능(陵·왕과 왕비의 무덤) 40기를 비롯해 원(園·세자나 세자빈, 왕의 생모인 후궁의 무덤) 14기와 묘(墓·그 밖의 왕실 관련 인사의 무덤) 66기를 합치면 120기나 된다. 관리가 쉽지 않아 현재 43기만 일반 출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이번 점검을 계기로 나머지 왕릉도 차츰 개방할 방침이다.
고양·양주=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