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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흰밥 먹어야 뿌듯, 빵 보면 군침?… 당신은 탄수화물 환자

입력 | 2014-03-31 03:00:00

회사원 김대리 - 주부 최씨의 탄수화물 과잉섭취 24시




《 대기업 홍보맨인 김태규 대리(33)는 뱃살이 고민이다. 키 178cm에 몸무게 88kg. 언뜻 보기에는 체격이 좋아 보이지만 2009년 입사 후 5년 만에 몸무게가 8kg이나 불었다. 특히 32인치였던 허리가 36인치로 두툼해졌다. 주부 최수민 씨(57)는 흰쌀밥과 떡, 빵을 좋아한다. 그의 공복 혈당은 dL당 105mg이다. 보통 공복 혈당이 dL당 125mg 이상이면 당뇨병으로 분류한다. 최 씨는 아직 당뇨병 전 단계이지만 안심할 수 없다. 동아일보와 강북삼성병원이 만든 ‘탄수화물 과잉섭취 자가 진단’에 따르면, 두 사람은 탄수화물 과잉 상태다. 이런 상태를 아예 ‘탄수화물 중독’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독이란 말을 쓰는 이유는 탄수화물을 섭취할 때 마약을 복용할 때처럼 뇌의 도파민 분비가 활발해지고 중독과 비슷한 현상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도파민은 쾌락이나 행복감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이다. 과잉 섭취된 탄수화물은 당뇨, 고혈압, 혈당장애 등 대사증후군을 부른다. 김 대리와 최 씨의 식생활을 통해 탄수화물 과잉섭취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

경기 의왕시 집. 속이 더부룩하다. 밤새 과음한 탓이다. 시간도 없고, 입맛도 없고, 그저 귀찮다. 물 한 잔만 마시고 출근한다.

이번 설문 조사에서 김 대리처럼 ‘아침 식사를 주 3회 이상 거른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45.1%나 됐다. 아침을 거르면 공복 시간이 길어져 점심에 폭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아침에 섭취하지 못한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해 위에서 영양소를 흡수하는 속도도 빨라진다.

남편과 자녀를 출근시킨 뒤 식탁에 앉았다.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꺼내기 귀찮아서 김치찌개 하나만 식탁에 올렸다. 후식으로 커피믹스를 타서 먹었다.

일명 ‘다방커피’ ‘자판기커피’ 등으로 불리는 인스턴트커피는 설탕이 많아 탄수화물 과잉섭취를 부르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번 설문에서는 ‘인스턴트커피를 하루에 1잔 이상 마신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51.0%나 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가공식품에서 당 섭취를 높이는 주범은 바로 커피(2010년 기준)였다. 인스턴트커피 한 잔에 함유된 설탕은 평균 6.1g. 하루에 인스턴트커피 두 잔을 마시면 당을 12g 남짓 섭취하게 된다.

커피전문점의 커피도 마찬가지다. 한 잔 분량에 들어 있는 평균 당 함량은 헤이즐넛라테 20.0g, 화이트초콜릿 모카 16.0g, 바닐라라테 15.1g 등이다. 아메리카노도 시럽을 두 번 짜 넣으면 당이 12g 들어가게 된다. 이번 조사에서 ‘커피에 설탕을 꼭 넣어 먹는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절반 정도(45.7%)였다.

회사 근처 식당에서 동료들과 부대찌개를 먹는다. 라면과 국수사리를 넣었다. 사리를 넣지 않으면 부대찌개를 제대로 먹은 것 같지 않다. 반찬인 감자조림과 단호박 샐러드도 다 비웠다. 밥은 흰쌀밥이다. 밥을 한 그릇을 더 시켜서 동료 2명과 나눠 먹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흰쌀밥은 잘 차린 밥상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과잉섭취하면 좋지 않다. 이번 조사에서 ‘현미밥보다는 흰쌀밥을 좋아한다’는 응답자가 50.9%나 됐다. 국민건강통계(2011년 기준)에 따르면 한국인의 가장 중요한 탄수화물 섭취원은 단연 백미(전체 탄수화물의 47.0%)였다.

탄수화물은 백미의 구성성분 중 무려 81.9%를 차지한다. 백미는 정제된 탄수화물 형태를 하고 있어 체내에 빠르게 흡수된다. 혈당을 빠르게 높이며 지방 축적 기능을 하는 인슐린 분비도 늘려 당뇨병과 비만의 원인이 된다. 현미는 쌀눈(배아)과 속껍질에 비타민, 칼슘, 섬유소 등 유익한 성분이 있지만 백미는 쌀눈과 속껍질을 도정하는 과정에서 이런 영양분이 깎여 나간다. 일본 국립암연구센터가 일본인 6만 명(45∼74세)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매일 3공기의 흰쌀밥을 먹는 사람은 매일 1공기를 먹는 사람보다 당뇨병 발병률이 1.48배나 높았다. 반찬에도 탄수화물이 적지 않다. 감자조림과 단호박 샐러드는 대부분 탄수화물로 이뤄져 있다. 또 떡국에 밥을 말아 먹거나 후식으로 떡·케이크를 먹는 것도 탄수화물을 과잉 섭취하는 습관이다.

집안 정리를 마치고 TV를 보다가 출출해졌다. 마침 이웃이 놀러 와서 멸치 국물에 국수를 끓여 먹었다.

최 씨처럼 ‘국수나 면을 하루 1끼 이상 먹는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23.1%였다. 이는 국수나 면에 대한 오해와 무관치 않다. 이번 조사에서 ‘국수나 면은 식사 대용이어서 많이 먹어도 괜찮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85.3%나 됐다.

하지만 밀가루나 쌀가루로 만든 국수도 흰쌀처럼 대표적인 정제된 탄수화물 식품이다. 정제된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혈당 조절을 위해 인슐린이 다량 분비된다. 또 체내의 혈당 수치가 떨어지는 과정에서 무기력해지거나 신경이 예민해지는 저혈당 증세가 나타난다. 이런 증세는 다시 탄수화물을 찾는 악순환을 부른다. 이것이 바로 탄수화물 중독이다.

거래업체와 미팅을 했다. 냉장고에서 청량음료와 오렌지주스, 에너지음료를 꺼내 왔다. 집에서 과일을 많이 먹지 않아 일부러 오렌지주스를 즐긴다. 이날은 졸음이 몰려와 에너지음료를 집어 들었다.

한국인의 당 섭취량 중 음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21%다. 음료만 마시지 않아도 전체 당 섭취의 21%를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공익과학센터(CSPI)는 청량음료를 ‘액체 사탕’(liquid candy)으로 규정했다. 일반적으로 청량음료 250mL 한 캔을 마실 때 약 20∼32.5g의 당을 섭취하게 된다. 이는 1일 권장 당분 섭취량인 50g의 절반에 해당한다. 두 캔만 마셔도 하루 섭취량이 넘어갈 수 있다. ‘콜라는 몸에 좋지 않으니까 대신 사이다를 마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이다에 함유된 당은 10∼12g(100mL)으로 콜라(13g)와 비슷하다. 에너지로 쓰고 남은 당은 지방으로 전환돼 비만의 원인이 된다.

과일주스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착각이다. 과일을 주스로 갈아 마시는 것도 당뇨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과일은 고체이고 과일주스는 액체다. 과일주스가 위를 통과해 장으로 흡수되는 시간이 빠르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혈당이 상승할 수 있다. 피곤할 때 마시는 에너지·비타민음료 역시 혈중 포도당 수치를 빠르게 올린다. 뇌는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따라서 뇌가 혹사당할 때에 몸은 본능적으로 당을 원하게 된다. 녹색소비자연대가 올해 1월 에너지 음료 26개를 평가한 결과 당 함량은 평균 24.2g이었다.

이웃들이 놀러왔다. 간식으로 고구마와 과일, 빵을 내왔다. 수다를 떨다 보니 세 명이 사과 6개를 순식간에 먹었다.

과일을 자주 섭취하면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번 조사에서 ‘과일은 몸에 좋기 때문에 많이 먹어도 괜찮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28.0%였다. 과일은 노화를 늦춰 주는 항산화 성분이 함유돼 몸에 좋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당이 많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혈당 조절이 어렵게 된다. 또 사과(탄수화물 함유량 15.8%), 감(23.0%), 귤(9.9%)에도 탄수화물이 들어있다. 과일의 1회 섭취량은 열량 기준으로 50Cal 정도(사과 3분의 1개, 포도알 20개, 홍시 1개)가 적당하다. 최 씨는 과일을 통해 당을 과다 섭취했다.

출출해진다. 사무실에 있는 과자를 먹으려다가 살찔까봐 생각을 접었다. 그나마 빵이 괜찮을 거 같아서 사무실 근처 빵집에서 소시지빵을 먹었다.

주변 환경도 탄수화물 중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김 대리의 사무실 한쪽에는 탕비실이 있지만 과자나 사탕 등 가공식품 투성이다. 가공식품은 대개 단맛을 내려고 당을 첨가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공식품을 통해 섭취하는 당은 하루 평균 34.9g(전체 당류 섭취량의 56.9%)에 이른다. 아이스크림(144.6g·700g 기준), 사탕(7.11g·10g), 초콜릿(8.96g·30g), 비스킷(7.58g·30g)에도 당이 적지 않다. 구글코리아와 벤처기업 ‘배달의 민족’ 등 일부 회사는 직원들의 건강을 위해 사무실에 채소 등 몸에 좋은 간식을 구비해놓고 있지만, 실제 이런 기업은 드물다. 회사원들은 탄수화물에 무방비로 노출된 셈이다.

김 대리의 사무실 바로 앞 커피전문점의 베이글, 케이크와 머핀, 분식집의 떡볶이와 순대, 대로변 간이 판매대의 토스트는 모두 탄수화물 덩어리다.

야근이 없어서 아내와 만나 외식을 했다. 자장면과 탕수육을 먹었다.

한국식품연구원의 연구 결과 외식으로 음식 100g을 섭취할 때마다 비만 유병률(비만이 될 확률)이 2.69% 올라갔다. 이는 가정식의 비만 유병률(0.98%)의 2.7배에 해당한다. 외식을 하면 먹는 양도 많아진다. 남성은 가정에서 저녁식사를 할 때 367.12g을 섭취하지만, 외식할 때는 529.93g을 먹는 것으로 조사됐다.

남편과 아이들의 귀가를 기다렸다가 저녁을 같이 먹었다. 하루 중 저녁은 그나마 제대로 먹는 편이다. 제일 배불리 먹는다.

저녁을 간단히 먹었더니 출출하다. 라면에 밥을 말아 먹었다. 채소류로는 포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밥이나 빵과 같은 탄수화물을 먹었을 때의 만족감이 너무 좋다. 때로는 맥주와 치킨, 과자를 먹는다.

이번 조사에서 ‘야식을 주 3회 이상 먹는다’는 응답자가 28.6%나 됐다. 탄수화물은 섭취 시간도 중요하다. 밤에는 식욕 억제 호르몬인 렙틴의 분비가 저하된다. 식욕이 억제되지 않아 더 많이 먹는 악순환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야식 증후군 환자 중에는 자다가 깨서 먹지 않으면 다시 잠들기 어려운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우리 몸의 움직임은 밤에 현저하게 줄어들어 에너지 소비량이 극히 적어진다. 낮에는 교감신경이 작용해 에너지를 소비하는 방향으로 대사가 이뤄지지만 밤에는 부교감신경이 지배적으로 작용해 섭취한 음식이 에너지원으로 사용되지 않고 지방으로 전환돼 몸에 쌓인다.

:: 탄수화물 과잉섭취 ::

흰쌀밥이나 밀가루 음식, 단 음식 등 탄수화물이 다량 함유된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는 것을 말한다. 중독이나 집착 증상을 부르며, 배불리 먹고도 또 다른 탄수화물 음식을 찾게 한다고 해서 ‘탄수화물 중독’으로 불리기도 한다. 당을 섭취하지 않았을 때 우울증이 생긴다는 이유로 ‘슈거 블루스(Sugar Blues)’, 탄수화물을 극단적으로 많이 섭취할 경우 주의가 산만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 ‘신드롬X’ 등으로도 일컬어진다. 기사에서는 탄수화물 섭취 자체가 몸에 해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에 탄수화물 중독 대신 ‘과잉섭취’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다.

<조사 어떻게 했나>

이번 조사의 진단 문항은 강북삼성병원의 이은정 교수(내분비학)와 동아일보가 공동으로 만들었다. 설문은 리서치 전문업체인 마크로밀엠브레인이 담당했다. 조사는 우리나라 전체 국민과 구성비율이 같은 전국의 만 15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2월 10∼14일 실시했다. 남성은 509명, 여성은 491명이었으며, 연령별로는 △15∼19세 87명 △20∼29세 168명 △30∼39세 205명 △40∼49세 226명 △만 50∼59세 203명 △만 60세 이상 111명이었다.

<도움말 주신 분>

이은정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임도선 고대안암병원 심혈관센터 교수(서울시 대사증후군 관리사업 지원단장), 허갑범 한국대사증후군포럼 회장, 윤정한 한림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강재헌 인제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김문호 김문호한의원장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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