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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헌재가 좁쌀영감이 됐다

입력 | 2014-04-01 03:00:00


송평인 논설위원

헌법재판소의 야간 시위 금지 한정위헌 결정을 보면서 헌재의 월권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해가 진 후에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는 보다 유연하게 고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헌재는 이 법 조항을 무효화한 뒤 나머지는 국회에 맡기는 통상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고 스스로 ‘밤 12시 이후에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로 바꿔 적용하도록 했다.

보통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은 법조문이 불명확해 자의적 해석의 소지가 있고 그런 해석이 기본권을 침해할 때 내려진다. 그러나 야간 시위 금지 한정위헌 결정은 말만 한정위헌 결정이지 기존 한정위헌 결정과는 성격이 판이하다. ‘해가 진 후에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의 뜻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무슨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그것을 밤 12시로 바꾼 것은 법 조항의 해석을 제한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법 조항 자체를 변경한 것이나 다름없다. 즉 국민은 앞으로 ‘해가 진 후에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밤 12시 이후에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새겨들어야 한다.

헌재의 의도는 만약 일몰이 오후 6시이고 일출이 오전 6시라고 한다면 오후 6시부터 밤 12시까지 시위를 불허하는 것은 위헌이고 밤 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시위를 불허하는 것은 합헌이라는 것이다. 즉 집시법 10조는 위헌인 부분과 합헌인 부분이 모두 포함돼 있고 헌재는 위헌인 부분에 한정해 위헌을 선언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한정위헌 결정이 왜 문제인가 하면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야간 시위의 전면 금지가 위헌이어서 일부 허용하더라도 그 시간을 몇 시로 정해 허용할지는 국회의 권한이다. 국회는 그 시간을 오후 10시나 11시로, 혹은 오전 1시로 정할 수도 있다. 그런데 헌재는 밤 12시 이전으로는 정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아버렸다. 밤 12시라는 시간이 자의적일 뿐 아니라 시간을 정해 야간 시위를 제한하는 방식 자체가 월권이다. 국회는 ‘해가 진 후에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를 ‘해가 진 후에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 다만 부득이한 경우 허용할 수 있다’는 식으로 단서를 추가해 시위를 허용할 수도 있다. 헌재가 국회에 준 재량이라고는 고작 밤 12시 이후 몇 시로 할지만 정하라는 것 정도다.

헌재는 단순한 위헌 결정을 해서 집시법 10조를 무효화하면 법 개정 전까지 야간 시위가 전면 허용되는 사태를 우려했기 때문에 한정위헌 결정을 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폭력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는 시위는 현행법으로도 사전 차단할 수 있으므로 밤 12시까지는 시위를 허용해도 염려할 게 없다는 게 헌재의 논리다. 똑같이 시야가 제한되는 야간인데 밤 12시까지는 되고 그 이후는 안 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3명의 헌재 재판관들이 소수의견을 통해 주장했듯이 위헌 결정을 한다면 그냥 단순한 위헌 결정을 했어야 한다.

이번 결정이 특별히 문제여서 하는 말이 아니라 한정위헌 결정 자체가 법에 근거가 없는 꼼수다. 대법원은 한정위헌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본래 위헌법률심판은 법 조항 자체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지 법 조항의 해석에 대한 판단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한정위헌 결정은 법조문의 최종 해석권을 가진 대법원과 충돌한다. 꼼수를 내버려두니 헌재가 이제는 사실상 법조문을 변경해 국회 입법권까지 침해하고 있다.

헌재는 헌법 정신의 큰 틀을 제시하는 곳이다. 좁쌀영감처럼 미주알고주알 참견하는 것은 헌재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고작 재판관 9명에 불과한 헌재가 입법의 세부적인 것까지 결정해 지도하려 하지 말고 대의기관인 국회에 맡겨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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