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선 산업부 기자
풀이하자면 이렇다. ‘국내 IT 개발자의 처우가 워낙 열악하고 수명도 짧다 보니 십중팔구는 40대 즈음 IT 업계를 떠나 치킨집 같은 자영업을 한다. 그러니 IT 개발 분야 재야의 고수를 찾고 싶다면 치킨집으로 가라. 치킨집 사장님은 네가 막혀 고심하는 코드를 대신 짜줄 것이다.’ 튀김망을 내려놓고 코딩을 하다 다시 닭을 튀기는 치킨집 사장님, 아니 IT 개발 고수의 모습은 척박한 국내 개발 업계의 씁쓸한 상징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그린팩토리 사옥에서 열린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콘퍼런스에서도 개발자 처우 문제가 화제였다. 이날 콘퍼런스는 실리콘밸리 IT 기업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9명이 연사로 나서 국내 청년들에게 미국 현지의 IT 기업 창업 환경과 개발 문화를 소개하는 자리였는데 이들이 들려준 실리콘밸리의 개발 환경은 한국과 크게 달랐다.
유 씨는 “한국에서는 제 아무리 유능한 개발자라도 위로 가면 조직의 장(관리자)이 돼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장되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관리자가 되지 않고 개발자로 남을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의 게임업체 ‘징가’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는 서준용 씨는 “우리 회사에도 내가 20년 전 즐겨 했던 게임을 개발한 개발자가 아직도 있다”며 “책상에 모니터를 두 개 놓고 한 화면의 글씨를 다른 한 화면으로 확대해 봐야 할 정도로 나이가 많지만 여전히 그는 개발을 한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의 개발 환경은 촉박한 시한에 쫓겨 밤낮없이 일하고 햄버거나 컵라면으로 3분 안에 끼니를 때운 뒤 믹스커피와 박카스를 페트병 용량으로 들이켜는 국내 개발 환경과 너무 달랐다. 그곳에는 개발자를 존중하는 문화가 있었고, 더 나은 아이디어를 위해 ‘여유’가 필요하다는 이해가 있었다. 국내에서 개발자 하면 불쌍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과 달리 실리콘밸리의 개발자는 창조적 자아실현이 가능한 멋진 직업으로 느껴졌다.
개발자가 다수였던 이날의 청중은 ‘어떻게 하면 실리콘밸리에서 일할 수 있냐’고 앞다퉈 질문했다. 실리콘밸리 기업에 취직하는 노하우부터 체류 비자 및 영주권을 취득하는 루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얘기들이 오갔다. 한국을 떠나 실리콘밸리로 갈 방법을 묻는 열기(?)를 보며 복잡 미묘한 마음이 들었다. IT 개발자를 치킨집 사장으로 내모는 이 후진적 개발 환경을 혁신하지 않고서는 ‘소프트웨어 강국 한국’이나 ‘창조경제 실현’은 모두 구호에 불과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임우선 산업부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