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화살촉 실물 사진. 윤석하 작가 제공
윤명철 동국대 교수
○ 활을 잘 쏜 민족
고구려 보병과 기병, 수군이 사용한 무기들은 그 시대 최고의 성능을 자랑한다. 안악 3호분, 덕흥리 고분벽화, 통구 12호분 등 무수한 고분에 그 실상이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우리 민족을 일컬어 ‘동이(東夷)인’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는데 이는 동쪽의 활을 잘 쏘는 민족이란 뜻이다. 여기서 ‘이(夷)’는 큰 활을 뜻한다. 오늘날 한국의 양궁이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현상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명궁 DNA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구려 시조인 주몽은 고구려말로 선사자(善射者), 즉 활을 잘 쏘는 사람이란 뜻이다. 아들 유리왕도, 증손자인 호동왕자도 명궁이었다. (고려를 세운 왕건, 조선을 세운 이성계 등도 활을 잘 쏘았다. 장보고의 원이름인 궁복(弓福),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弓裔)도 활(弓)자가 들어간다.)
고구려의 활은 맥궁(貊弓) 각궁(角弓) 단궁(檀弓)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맥궁의 우수성은 중국의 여러 기록에서도 나타난다. 맥궁의 활채는 한 덩어리가 아니라 줌피(활 가운데 부분)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서 끼워가며 만든다. 광개토대왕(광개토태왕)은 산동반도의 남연에서 물소를 수입해 물소 뿔을 활에 사용했다. 활 양쪽을 반대로 뒤집어 굽게 만든 다음에 소나 말의 힘줄로 된 시위를 걸어 탄력을 최대치로 만들었다. 1m가 채 안되는 단궁이지만, 사거리는 최대 300m나 된다. 보병은 단궁 대신에 장궁(큰 활)을 쓰기도 하는데 고구려는 손권의 오나라에도 첨단 무기인 각궁을 수출했다.
화살은 싸리나무로 만들며 길이가 보통 80∼90cm이지만, 단단하기가 유명해 당시 여러 나라에 수출했다. 화살촉은 일반적으로 송곳 모양의 작은 것 외에도 굵고 긴 뱀머리 모양, 끝이 넓적한 도끼날 모양도 있었다. 화살촉은 두꺼운 철판을 꿰뚫을 정도의 성능을 갖고 있었다. 특히 물고기 꼬리처럼 두 가닥으로 갈라진 화살촉은 고구려 특유의 것으로 군마를 살상할 때 주로 사용되었다. 그 밖에 ‘휘잉’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명적(鳴鏑)도 흔하게 사용된 화살촉 중의 하나이다.
○ 고구려의 군사편제
중국 집안시 소재 무용총 벽화. 고구려 전사들이 맥궁을 사용해 사냥을 하고 있다.
중기병은 말투구, 몸통 전체를 덮은 말다래에 꼬리 부분까지 철제품으로 무장했는데, 칼보다 위력이 강한 3m 남짓 하는 장창을 들고서도 자유자재로 마상에서 전투를 할 수 있었다. 이는 1000여 년 후에 나타난 중세 유럽의 기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과학적이고 위력적인 군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동천왕과 중천왕 때는 중국 지역과 싸울 때 5000명의 철기병을 동원하였다. 400년 광개토태왕 때에 보병과 기병을 합쳐 5만을 신라에 파견하였는데, 그 후 신라나 가야에서 무장기병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에도 고구려 군대는 금으로 도금한 철제갑옷인 명광개를 입기도 했다. 고구려 군대 중에서 기마군단이 주력 부대였는데, 이들은 최첨단 무기들을 사용하면서 점차 동아시아의 최강 부대로 발전하였다.
무엇보다도 무기의 성능을 좌우하는 것은 물리학과 역학 등 자연과학이다. 맥궁은 직선으로 쏘는 직궁이 아니라 곡선으로 비상하는 만궁이다. 그러므로 사거리와 중력, 탄도 각도, 장력 등을 고려해서 활채, 화살 길이 화살촉의 무게와 모양을 결정해야 한다. 창의적인 고구려인들은 화살이 날아갈 때 회전효과를 극대화하도록 쇠촉에 홈을 파 넣기도 하였다.
이렇듯 고구려에는 무기를 대량 생산하는 군수공장들과 숙련된 기술자 집단들이 존재하였고, 원료를 쉽게 조달하고 무기도 신속하게 운반하는 교통수단과 교통망도 잘 발달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유관 산업들이 발달하면서 일자리가 만들어졌으며 첨단과 최고의 기술력은 생산성을 높이고 사회를 조직화시켜 국력을 신장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고구려에 무기는 적으로부터 자유와 안전을 방어하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고구려의 과학과 산업, 무역을 발전시키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국제질서가 요동치고, 영토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동아시아는 세계에서 군사력이 가장 많이 집중된 지역이다.
참고로 지난해 국방비 지출을 보면 1위는 미국이고 뒤이어 2위 중국, 4위 러시아, 5위가 일본이다. 그리고 한국은 9위이다.
윤명철 동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