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지방선거… 여론조사의 함정
이미 선거 현장에서는 ‘여론조사를 조작해 당내 후보로 만들어주겠다’며 예비후보자들과 거래하려는 정치브로커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각 당이 6·4지방선거 공천 지표로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심을 반영한 상향식 공천 구현이라는 명분으로 도입한 여론조사 경선이 오히려 민의를 왜곡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 1억 원이면 후보가 된다?
정치브로커 C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여론조사 기간에 맞춰 단기 전화를 대거 개통한 뒤 기관에서 전화가 걸려오면 몇 개의 전화로 착신되도록 하는 게 가장 흔한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C 씨는 10만 명 인구의 지역선거에서 1000개의 전화 회선만 확보하면 5∼10%포인트가량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여론 조작이 가능하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유권자가 10만 명 이내인 기초선거 경선에선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 낮은 응답률 때문에 여론조사 조작이 가능
여론조사 조작이 가능한 것은 낮은 응답률 탓이다. 인구 10만 명 도시의 경우 약 2만5000가구가 일반 유선전화에 가입돼 있다. 전화자동응답(ARS) 조사 때 응답률은 3∼5% 수준. 5%로 가정하면 1000개의 샘플을 모으기 위해 전화 2만 통을 걸어야 한다. 전화번호 1000개를 확보한 뒤 연령 성별 등을 나눠 특정 후보를 지지하도록 답변하게 하면 쉽게 여론 조작이 가능한 것이다. 응답률이 낮은 20대와 30대라고 답하면 ‘조작 효과’는 더 커진다.
브로커들은 주로 특판 형식을 통해 KT에서 전화 회선을 확보한다. 한 정치브로커는 “한 사람이 대규모로 단기 전화를 확보할 경우 의심을 사기 때문에 조직원들에게 할당해 회선을 확보한다”고 말했다. 1개 회선에 가입비는 8000원이며 하루 요금은 300원. 일주일 이용할 경우 회선당 1만 원의 비용이 든다. 1000개 회선이라면 1000만 원의 요금과, 조직원 및 브로커 중개 비용 등을 감안해 5000만 원 안팎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과거에는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던 호남에서 활동하던 브로커들이 대거 영남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호남에서 강세인 새정치민주연합이 기초선거 무공천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상향식 공천을 도입하면서 여론조사 결과가 사실상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변수로 떠오른 탓도 있다. 브로커들에게 ‘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은 여론 조작시장의 황금어장이다.
여론조사 조작을 하다가 적발되면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처벌받지만 적발이 어렵다. 계약서도 쓰지 않아 흔적이 남지 않는다. 점 조직 형태로 조작에 개입하는 이들을 잡으려면 내부 제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적발되면 이유 불문하고 후보 자격을 박탈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2년 대선에서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여론조사 단일화를 한 이후 후보 선정 과정에 여론조사가 자주 활용됐다. 정치에 대한 주민 참여가 낮은 현실을 감안할 때 당원 투표만으로 후보를 뽑으면 당 조직에 의해 민심이 왜곡된다는 지적을 의식한 조치였다.
하지만 여론조사 경선의 함정에 대해선 끊임없이 경고가 나왔다. 오류와 조작 가능성이 있는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참고자료로만 써야 한다는 데도 명분에 사로 잡혀 민심 왜곡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손영일 scud2007@donga.com·길진균 기자